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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Jul 21. 2023

독서와 하루

책 추천에 제법 자신이 있는 편이라, 친구들에게 올해 안에 책 한 권씩을 선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장르별, 취향별로 겹치지 않는 책들을 다양하게 선물하리라 다짐하면서, 도서관 대출 목록을 뒤적거렸다. 어떤 책인가, 어떤 걸 읽어야 기쁠까를 고민하다가, 독서의 기쁨을 공감에서만 찾는 것은 아마도 좀 편협할 거야, 하는 식으로 생각이 튀었다. 예를 들면, 나는 이와사부로 코소의 ≪뉴욕열전≫ 310쪽에 시선이 빼앗길 수도 있다.      


“‘액티비즘’이라는 개념은 힘과 가능성을 현재진행형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과 미결정성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기치를 세우고 있는 이상사회를 ‘바로 지금 이 운동단체’ 속에서 실현하는 것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시적 정치’의 원리에서 기인하고 있다.
[옮긴이] 예시적 정치: 의도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사회와 비슷하게 조직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중략) (310쪽)     


뉴욕의 사회운동사를 설명하다가 등장한 부분에서 나는 이상을 (소규모 그룹 안에서든, 다른 어디서든) 미리 성취해 버리는 것에 매료됐다. 내가 바라는 것을 미리 살아내기. 그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가 이미 좋은 사람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하지만 스무 살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꿈꾸는 것을 선취하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의 이 대목은 또 어떤가.      

인류학이 주장하는 객관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관찰 대상인 어떤 사회의 고유한 가치들을 객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바라보는 사고방식도 객관화하는 겁니다. 인류학자는 자기의 감정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심성의 범주를 만들고, 공간과 시간, 반대와 모순 등에도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41쪽)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객관’이라는 단어를 의심하지만,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공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볼 때, 그를 바라보는 내 기준과 방법까지도 점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역시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던 지점이었다. 만약에 내가 내 생각을 대신 정확하게 언어화해주거나 나에게 공감해주기‘만’을 바란다고 하면, 이런 배움은 딱히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럼 이 빛나는 사유들을 놓치고 말았겠지. 책 속의 (내가 한 번도 하지 못한) 낯선 생각들은 따뜻한 위로를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가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고, 너는 이것들에 공감하고 반응하기는커녕 불완전하게 아는 것에도 급급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네가 차마 감정을 이입하거나 추측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도 엄연히 존재하니 너는 그걸 네 멋대로 재단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준다. 그건 명령이지만 자유이기도 하다.


타자나 그의 사유를 네 마음대로 판단하라고 부추기는 악의 강요에 묶여있던 마음이 풀려난다. 좋은 책이 낯선 구원자가 되는 순간. 이렇듯 책은 나에게 타인과 같고 책을 읽는 행위는 타인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낯선 것이 주는 경이와 위험이 공존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책은 좀 더 절제된 모험이고, 내키지 않으면 중단해도 되는 융통성이 있다. 그러니 타자를 만날 준비를 하기 위해 책이란 타자를 먼저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신에게 되묻는다. 누군가가 차별과 배제의 언어로 상처를 주기 전에 나를 방어할 무기를 벼르고, 내 취약한 양심을 돌아보기도 하는 준비시간으로서의 독서. 누군가가 아파할 때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밑천으로서의 독서를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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