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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Jul 28. 2023

빼앗길 수 없어, 그게 미움이더라도

 그냥 미워하는 거야. 널 악마화하는 게 아니라.      


시절이 흉흉해서 마음이라도 따뜻해야 할 것 같지만, 해마다 한두 명씩 꼬박꼬박 절교해서 그런가, 갈수록 쓸쓸해진다. 어떤 지인은 ‘나를 악마화하지 말라’고 억울함을 표현해서 가끔씩 떠오르기도 한다. 악마화라니. 꼭 악마라고 생각해야 미워하나, 순진하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누가 누구의 순진함을 지적하겠나. 순진하고 아둔한 태도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사는 건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런데도 TV 강연에 출연한 교수마저 지인과 비슷한 소리를 하면 교수씩이나 돼서 순진하게, 하는 마음이 안 들 수 없는 것이다.   

  

아이히만에게서 평범함과 ‘생각 없음’만을 발견하고서도,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한나 아렌트 얘기까지 해야 하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책 한 권 분량으로 분석했다. 이론을 적용했고 아이히만이 전범이 된 구조적인 원인을 탐색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그에 대한 분노와 미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적개심은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진다. 타인이 죽는 걸 보기 위해서 자기 인생을 걸어버린 특별함보다, 상부에서 시키니까 실행했을 뿐이라는 평범한 태도는 오히려 더 역겹게 느껴진다. 전자의 특별함은 편향과 광기의 일환이라서 막아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후자의 평범함은 그 자신의 도덕성과 사고력을 발휘했다면 없었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여기서의 미움은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미움도 그렇다. 내가 절교했던 친구들 중에서 악마같이 못됐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덧붙이면 절교가 다 상대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절교를 통보당한 적도 많다.) 단지 내가 절교하고 싶을 만큼 미워했던 사람들은 평범하지만 참을 수 없는 짓을 했다. (아이히만의 짓거리보다는 훨씬 덜 하더라도.) 유명인이 자살을 했다는 이유로 비웃는다든가, 캐셔가 앉아서 계산하는 꼴을 참지 못한다든가, 청소부나 경비원을 하대하고 노인과 여자를 조롱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 역겹긴 하지만 꽤 자주 일어나는 일들. 그렇게 평범한 악랄함이 어떤 환경에서 조성되는지 분석한 책은 여럿이고, 책에서 말한 주장들은 다 타당하다. 경제적인 양극화나 빈약한 사회 안전망, 갈등을 조정 못하는 토론장이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있다고. 그걸 행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고. 마치 독자가 그 사실을 몰라서 앙심을 품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이제 그 저자들이 정말 자기들의 주장과 태도를 믿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말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곱씹으면서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을 물리친 걸까?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타인의 지성과 인격을 믿으면 믿을수록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던데. 오히려 마음 한구석에서 그 사람을 그저 무능력자로,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보기로 해서 미움이 사라진 건 아닐까. 남을 동정하는 게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든지. 타인을 향한 경멸과 증오는 나쁜 것이기에 꺼림칙하기는 해도 그를 그냥 불쌍하게 생각하라고, 왜 말하지 않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닌 말들은 비겁하다. 


아무래도 이 ‘대혐오의 시대’에서 미움, 증오와 같은 감정이 혐오범죄나 차별 행위로 발전할까 겁이 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느끼는 것이 바로 비극적인 사건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처럼 감정은 그저 감정인데도.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폭력적으로 분출하게 부추기는 것임에도. 어떻게든 미움을 느끼면 느끼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사방에서 억누르려 든다. ‘혐오’라는 말을 엉뚱하게 이용해서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떼를 쓰는 애송이들의 시대. 이런 시대에서 자기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그게 증오나 미움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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