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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Aug 12. 2023

그런 사랑은 없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 보면, 지상으로 열차가 나오는 순간이 있다. 많은 경우에 한강을 끼고 있는 풍경이 등장한다.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있으면 이런 쓰레기 같은 상황에서도 저건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희망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저걸 보는데도 피곤하군, 체념하기도 하지만 죄책감이 든 적은 없다. 어두운 군부독재 시절, 아름다운 강을 바라볼 때도,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죄책감을 느꼈다는 모 작가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나는 이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청춘의 죄책감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고통, 타인의 고통 앞에서 예의를 지키려고 했던 분투니까.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내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요즘은 좀 다른 느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절이다. 7, 80년대에는 어두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잠식했다면, 요새는 어떤 아름다움이든 시대의 역겨움을 외면하기 위해 이용된다. 강이 이렇게 아름다우니, 세상이 더러운 건 잊어버리라는 식인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 세상이 쓰레기 같은 게 무슨 대수냐는 것이다. 심지어 이 사회의 문제가 사랑의 상실이라고 주장하는 머저리들이 넘쳐난다. 고작 외로움이 가난과 모욕과 폭력보다 중요하다 믿는 바보들.     


그 바보들은 서로 사랑하면서 타인을 배제하고 조롱한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타인에 대한 품평이나 각종 인격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정당한 불만을 품고 집회에 나선 시위자들을 (허락도 없이) 동물원 원숭이마냥 찍어댄다. 아니면 다 들으라는 투로, 저런 걸로 대통령한테 저러는 게 이해 안 된다, 고 당당하게 자기 애인과 지껄인다. (경험상 대부분 이런 무례는 이성애자 커플 사이에서 나온다) 남의 정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 백번 양보해 자신의 자유라 치더라도 사회적인 참사나 역사 이슈 때문에라도 시위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지.     


당사자들끼리의 사랑이 꼭 타인이나 사회에 대단히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랑마저 업적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최소한 안전하게 타인을 혐오하고 차별할 울타리로 연애 상대를 취급하진 말아야 할 텐데 과연 몇이나 그러고 있을는지. 의심되면 핸드폰 검사부터 해야 하는 인격침해적인 연애 문화에 익숙해져서, 서로에게 착취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걸 수도 있겠다. 정말 그게 고맙다면, 타인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사랑에 기대할만한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가능성일 텐데. 이 시대는 ‘사랑’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사람들이 유치하고 이기적인 자신의 삶을 박제하는 데 연애를 이용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몇몇 바보들이 연애, 성애와 다른 사랑과 돌봄의 형태를 무시한다. 사랑이라고 불리지 않는 사랑, 한순간의 연대 혹은 환대로 불리는 사랑을 자신들이 차마 다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조롱한다. 후에, 차별과 혐오를 마음껏 표출하고 그들은 사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무마하려 한다. 이 사회에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사랑이 부족해서 각종 갈등이 일어나고 혼인율, 출산율마저 떨어지고 있는 거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과실조차 말할 용기도 못 냈으면서, 그들 때문에 사랑을 떠나는 사람에게 윽박을 지른다. 이 시대의 진짜 문제는 사랑의 상실이 아니라, 사랑의 ‘멍청함’이다. 사랑에 어떤 희생과 비용을 치르든지 간에, 그로 인해 내가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사랑을 고수하면 고수할수록 편협한 인간이 된다. 아니면 연애 관계 안에서 착취를 당하든가. 그나마 멀쩡한 연인이 되어 사랑을 해도 당사자 외에 다른 이들에게는 사랑의 미미한 잔열도 닿지 못한다. 윤리적으로 아주 조금의 온도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왜 이토록 권유되는지. 서로 팔짱을 끼는 것이 백래시에 함께 싸우고 함께 우는 것에 비해 그토록 대단한 것인지. 권유되고 과시되는 사랑들 속에, 슬퍼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그런 사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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