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을 시작하고 어느새 3주 차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아침이면 이제 어르신들 중 몇 분은 제 얼굴을 기억해 주시기도 했고, "학생 왔네" 하며 반갑게 맞아주시는 모습이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인사를 드리며 들어가는데, 구석에 앉아 계시던 한 어르신이 손짓을 하셨습니다.
제가 3주 동안 있으면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던 어르신이었습니다.
어르신께 다가가니 갑자기 저를 안으시며 반가운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우리 손주 왔네!"
저는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나랑 닮은 손주가 있으신가? 손주가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하지만 그 어르신의 따뜻하고 애틋한 눈빛에 도저히 "저 손주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할머니 보고 싶어서 왔지요!"
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어르신께 붙잡혀 있다가 겨우 탈출해서는 요양보호사님께 그 어르신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원래 센터를 다니시던 분인데 폐렴에 걸려 요양병원에 한 달가량 있다가 돌아오신 거였고, 입원하기 전에도 사람을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한 남자어르신을 남편이라고 착각해 불편해진 남자어르신이 센터를 옮긴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요양보호사님께
"그럼 어르신께 잘못 보신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거나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고 물었더니,
"말도 마세요. 저분 성격이 엄청나셔서 아니라고 말씀드렸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그래도 어르신이 착각을 하셔도 심하게 집착을 한다거나 선을 넘거나 하시진 않으시니 적당히 맞춰드려 주세요."
그날 이후 출근할 때마다, 센터 입구에만 들어서면 손주가 오늘도 왔다며 어르신의 환영식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날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주시기도 하고, 간식 시간에는 간식을 몰래 숨겨놨다 저한테 주시기도 했습습니다.
사실 어르신을 속이는 느낌도 들어 부담스러웠지만, 저를 제외한 센터 어르신들과 직원들은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어르신이 평소에는 주변 어르신들께 시비를 건다거나 직원들에게도 욕을 하는 등 성격이 좋지 못하셨는데, 손주가 보러 온다는 생각 때문이신지 저를 손주로 착각한 이후부터는 성격이 매우 온순해지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어르신은 저에게 오셔서 실습 끝나도 가지 말고 계속 좀 와달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며칠 있다 보니 손주 노릇을 하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뭔가를 실수해 혼날 때 어르신이 나타나셔서
"아니, 우리 손주를 누가 혼내!"
하며 화를 내주셔서 몇 번의 위기를 어르신 덕에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일을 겪으며 실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실습기간이 끝나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매우 막막했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실습 마지막 날,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저를 손주로 생각하던 어르신께는 그냥 조용히 인사만 드리고 가기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어르신께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제가 방학이라서 매일 놀러 왔는데요... 이제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자주 못 올 것 같아요.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꼭 찾아뵐게요."
어르신은 잠시 저를 쳐다보시더니 제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우리 손주. 꼭 놀러 와라.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그날 센터 문을 나서는데,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 동안 저는 실습생이었지만, 그 어르신께는 ‘기다림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하루를 웃게 만드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도움을 드리러 간 줄 알았지만 정작 위로를 받고, 웃음을 얻고, 배움을 안고 나왔습니다.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머물렀던 그 시간은 제게 '사회복지는 관계 속에서 자란다'는 걸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 한쪽에는 작은 약속이 자리 잡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 어르신 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손주 왔어요.”라고 인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