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는 헬기추락사고 생존자입니다

by young

저는 강원도, 그 중에서도 ‘양구’라는 지역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내 부대 중에서도 혹한기로 악명 높은 2사단.

평생을 부산에 살면서 눈 구경조차 힘들었던 제겐 그 추위가 버티기 힘든 적응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훈련에도 익숙해지고 이병을 지나 일병이 되었을 무렵,
‘지상공중합동작전’이라는 대규모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수송헬기들이 대기 중이었고 우리 소대는 그 헬기를 타고 훈련지로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


처음 타보는 헬기라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병사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자 대대장이 병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군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헬기가 추락한 적 없다. 걱정말고 타라.”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고,우리는 차례차례 헬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들이 점점 작아지고 발 아래로 펼쳐지는 경치를 보며
“오, 진짜 멋있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평화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아주 짧았습니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헬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부대원들을 살펴보는데, 그 순간 거센 진동과 함께 헬기가 방향을 잃고 기체 전체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가운데 본능적으로 뭔가를 붙잡고 버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헬기 한쪽 문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열린 문으로 전입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신병이 빨려 가듯 그대로 밖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저희 모두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붙잡고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너무 길었던 그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땅으로 추락했습니다.

기체는 강하게 지면과 충돌했고 동시에 기체 안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기체 밖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어서 밖으로 빠져나오던 중, 갑자기 무언가 ‘쾅’ 하고 머리를 강하게 가격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뭐가 부딪힌 건지도 몰랐지만, 나중에 방탄모를 확인해보니 위장 커버가 길게 찢어져 있었고 방탄모 본체에도 깊은 흠집이 남아 있었습니다.


프로펠러 파편이 튀어 방탄모에 맞은 것이었습니다.
만약 방탄모를 쓰지 않았거나, 그 순간 벗겨졌더라면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기어 나오자 멀리서 사람들이 뛰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괜찮냐”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은 없었지만 나는 ‘살았다’는 걸 어렴풋이 실감했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이송되어 엑스레이를 찍고 입원 조치가 되었습니다.

얼마 후 소대장이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전화기를 제게 건넸습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머니였습니다.


사고 직후 놀란 소대장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막 임관한 신입 장교였던 그는 충격 속에 울먹이며 설명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아들이 큰 부상을 입은 줄 알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건 그날 어머니의 ‘불안’은 이미 낮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제 형도 같은 시기에 군 복무 중이었고, 마침 그 훈련에 사진병으로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훈련 전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헬기들도 많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병사들도 헬기를 타는 거냐고 물어보셨습니다.


형은 “헬기는 보통 장교들이 타지, 병사들은 안탈거에요.”라며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어머니는 이유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셨고 가슴이 쿵쾅거리며 불안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이 결국 현실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며칠 뒤 퇴원한 저는 동기들과 소대원들의 상태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헬기 밖으로 빨려 나갔던 신병은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고 의가사제대를 했고, 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동기는 골반뼈가 산산조각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부상자들이 있었고, 조종사는 사망, 부조종사는 중상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멀쩡했던 사람은 저였습니다.


대대장은 사고를 겪은 병사들을 불러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4박 5일 위로휴가를 주었습니다.


그 당시엔 얼떨떨했고, 그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 제 동기는 매일 밤 추락하는 꿈을 꿨습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무의식 중에도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그저 ‘몸이 멀쩡하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던 저도 높은 곳에 서면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흔들릴 때, 건물 옥상에 올랐을 때, 그리고 특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유 없는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몰려왔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몸이 괜찮다고 해서 마음까지 괜찮은 건 아니라는 걸요.

그 사고 이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걸 안고 있을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은 결국 제가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무심하지 않고, 누군가의 알수 없는 표정 속에서 도움을 청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비행기를 타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높은 곳에 서면 조용히 숨을 고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을 숨기지 않고 그 경험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그 흔들림이 있었기에, 지금 저는 누군가의 삶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대한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첫번째 관문인 사회복지실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4편에서 계속)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8266.html


헬기사고 당시 났던 기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