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을 읽고 오셔야 이해가 됩니다.
어느 날, 알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야간 알바가 끝나고 지쳐 잠들어 있던 늦은 오전이었습니다.
무심코 핸드폰을 들었고,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전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교수님이셨습니다.
지난 몇 주간 수업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저였기에 'F학점? 아니면 제적을 당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지금까지 결석한 건, 없던 걸로 해줄테니 지금부터라도 학교를 나와라 ."
그 한 마디에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책망도, 실망했다는 말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건네신 그 말 속에서 저는 따뜻한 신뢰와 두터운 배려를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노래방을 그만 뒀고, 다시 학교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빠졌던 수업을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듣는 강의가 그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제가 몰랐던 ‘사회복지’라는 세계의 깊이를 처음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본인이 지도하시는 동아리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저는 처음으로 같은 과 선후배들과 진심으로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에서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 현장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불안까지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도 정기적으로 만나 식사를 하고, 서로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손을 내미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또, 교수님은 저에게 영어 공부도 권유하셨습니다.
사회복지에서 외국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기억에 남습니다.
"너 자신을 위해서 하는 공부는, 돌아오는 게 다르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토익 시험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받은 점수는 지금 생각해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해볼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교수님이 주관하시는 봉사활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연탄 나눔 봉사'였습니다.
저도 이 봉사에 참여를 하였는데, 연탄나눔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지게에 연탄 10장을 올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언덕길 너머에 있는 어르신 댁까지
일일이 발로 걸어가 연탄을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약 4kg.
열 장이면 대략 40kg입니다.
제가 키도 크지 않고, 체격도 작은 편이라 처음 지게를 짊어졌을 때는 정말 앞이 깜깜했습니다.
문제는, 연탄을 가져다드려야 하는 집들이 하나같이 비탈길 꼭대기거나, 계단이 수십 개쯤 되는 산동네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몇 걸음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풀렸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이거 하나만 옮기고, 그냥 안 보이는 데 가서 좀 쉬자. 아니면 그냥... 도망가버릴까.'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그때는 정말 그렇게까지 생각했습니다.
겨우겨우 지게를 지고 어르신 댁 앞에 도착했을 때, 어르신께서 밖에 나와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 학생, 정말 고마워... 힘들었을텐데 정말 고맙다.”
그러더니 제 손을 꼭 잡고,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서 어떤 것이 무너졌습니다.
‘힘들다’, ‘못 하겠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힘들어도, 이 연탄 한 장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따뜻하게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손에서 느꼈습니다.
그날, 저는 남은 연탄들을 끝까지 다 옮겼습니다.
정말 기어가듯, 비틀비틀 올라가면서도 한 장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해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날 처음으로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학과는 2학년이 되면 전공 분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노인복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정신보건, 의료복지 등 여러 길 중에서
저는 고민 없이 ‘노인복지’를 선택했습니다.
교수님의 전화 한통과 그날, 그 어르신의 진심이 제 인생의 방향을 정해준 셈입니다.
그렇게 저는 진로를 정하고, 공부에 열심히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봉투 하나가 제게 도착했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시련인 입영 통지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군 복무의 시간 속에서 저는 또 하나의 큰 사건을 겪게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