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바로 한 달간 진행하는 사회복지실습입니다.
저는 실습을 앞두고 매우 기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회복지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실습을 나가서 어떤 대상자를 만날까?'
실습 첫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만나서 슈퍼맨처럼 멋있게 해결하는 저를 상상하며 실습지로 정해진 노인주간보호센터의 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그런데...
“실습생은 저기 빈자리 앉아서 이거 먼저 해줄래요?”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 대신 제가 만난 건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더미였습니다.
‘그래, 처음부터 어르신을 바로 만나는 건 아니지. 행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저는 계속 문서정리와 복사, 스캔, 전산입력만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살짝 웃으며 담당 선생님에게 농담처럼 물었습니다.
“혹시 제가 사회복지실습이 아니라 사무원실습 나온 건 아니죠?”
선생님은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회복지에서 기록은 대상자에게 제공된 서비스를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에요."
저는 그냥 저를 달래기 위해 형식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하고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실습도 어느새 중반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새로 입소하신 어르신의 초기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어르신과 보호자와 마주 앉아서 인적사항과 병력, 일상생활 능력, 보호자의 돌봄 정도 등 다양한 항목들을 꼼꼼히 적으셨습니다.
상담이 끝나고, 다음은 저의 차례였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수기로 메모해 둔 내용을, 제가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여 출력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며칠 후, 센터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어르신께서 낮 시간 중 갑자기 언어가 어눌해지고,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보이셨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보호자에게 급히 연락을 취하려고 서류를 보고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쪽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황당해하는 낯선 목소리에 선생님은 순간 당황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입력된 문서를 다시 확인하셨고, 이상하게 느끼신 선생님은 바로 본인이 수기로 적었던 서류를 꺼내 확인해 보니 한자리가 잘못 입력이 되어있었습니다.
다행히 수기로 적었던 번호를 통해 보호자께서 바로 병원으로 오셨고, 어르신은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받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후유증 없이 회복되셨지만, 그날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저녁,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따로 불려 갔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죄송하다고 연거푸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아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실수죠. 하지만 복지는 사람의 삶과 바로 연결된 일이에요. 우리는 책상 앞에서 문서 작업을 하지만, 그 문서 하나가 어떤 하루를 바꿀 수도 있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해요.”
서류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그저 ‘행정’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삶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을 어르신의 흔들리던 눈빛과 선생님의 한마디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떤 간단한 서류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그 종이 한 장에 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지란 결국 사람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저는 그 조그만 실수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는 첫 번째 시작이, 어쩌면 바로 ‘정확한 기록’이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