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복지관의 문은 좁았고, 신입 사회복지사에게 기회를 주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발걸음이 닿은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비영리 복지기관이었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이곳에서라도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출근한 첫날부터 좌충우돌이었습니다.
대표님은 저에게 후원 물품을 가지러 가야 하는데 운전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고, 쉬는 동안 부모님의 차로 연습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저는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차키를 받아 들고 대표님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있던 차는 바로 스타렉스였습니다.
제가 운전해 본 거라곤 소형차 몇 번 몰아본 게 다였는데, 갑자기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버린 것입니다.
급격하게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해놓고선 차키를 대표님에게 넘기기에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소형차나 봉고나 어차피 엑셀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는 건 다 똑같지.'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하고 출발을 하는데, 주차장에서 나오는 것부터가 1차 관문이었습니다.
소형차로 운전할 때는 여유롭게 통과하던 지하주차장 입구였는데, 스타렉스의 차 폭이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겨우 입구를 빠져나온 저는 도로라는 2차 관문을 마주쳐야 했습니다.
차 폭이 소형차보다 훨씬 크다 보니 도로에서 자꾸 중앙선을 침범하게 되었습니다.
브레이크도 소형차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살짝만 밟아도 멈추던 소형차와는 달리, 스타렉스는 영혼을 실어 발바닥으로 바닥을 뚫는다는 느낌으로 밟아야 겨우 멈췄습니다.
대표님도 조수석에서 핸드폰을 보시다, 계속 비틀거리고 아슬아슬하게 멈추는 것을 느끼고는 슬그머니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으셨습니다.
결국 도착지의 절반 정도 지났을 때, 저는 조수석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저희 기관은 공모를 통해 새 트럭을 후원받았습니다.
트럭에 리본도 달고 후원기관과 사진도 찍은 후, 트럭을 가지고 기관으로 돌아오다 그만 옆을 긁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새 차를 가지러 가서 긁은 차로 가져온 저를 보는 대표님의 차가운 시선 앞에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자신 있었던 서류업무도 처음이다 보니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드라마 속의 직장 상사처럼 모르는 것들은 친절히 알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오피스 드라마보다는 동물의 왕국에 오히려 더 가까웠습니다.
각자의 업무에 치여 누군가를 돕거나 봐주거나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각자도생'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루는 구청에 보낼 공문 작성을 지시받아 열심히 작성하여 팀장님께 결재를 요청했습니다.
팀장님은 제가 작성한 공문을 열어보시고는 한숨을 쉬며 저를 자리로 불렀습니다.
"oo 씨, 공문도 작성 안 해봤어요?"
이곳이 첫 직장이라 공문 작성을 해봤을 리 없던 저는 공문을 엉망으로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공문은 이랬습니다.
'일전에 요청하셨던 서류 보내드립니다~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수고하세요^^'
공문을 이메일정도쯤으로 생각했던 저는 최대한 귀엽게 보이기 위해 이모티콘까지 작성했지만, 공문은 제가 생각하던 그런 서류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공문 작성하는 법 찾아보고 다시 쓰세요."
결국 인터넷을 통해 공문의 양식과 형식, 쓰는 법 등을 배웠고, 공문은 이메일 정도의 가벼운 서류가 아닌 상견례자리처럼 예의를 차려야 하는 서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힘겹게 업무를 쳐내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회사의 지하에는 교회가 있었고 대표님이 그 교회의 목사님이라는 것을 입사한 후에 알게 되었는데,
매주 수요일마다 기관 내에서 예배를 보고 그것도 모자라 주일 예배에 나오라는 압박도 있었습니다.
예배 참석은 '권유'의 옷을 입었지만 사실상 ‘의무’였습니다.
무교였던 저에게는 엄청난 고역이었습니다.
더 황당한 건 십일조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첫 월급날, 근데 제 통장에 찍힌 월급은 10%가 공제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십일조라는 명목 하에요.
억울했지만, 신입 사회복지사가 그 구조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버텼습니다.
스스로에게 "그래, 이 또한 경험이야"라며 마음을 다잡으며요.
그렇게 버티다 보니 2년차에 새로운 후임이 들어왔습니다.
대표님의 교회에 다니는 청년이었는데, 대표님과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없었고, 관련 경력도 전혀 없어서 전문적인 업무 대신 잡무를 맡는 수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대우는 남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파일을 찾다 우연히 급여대장을 보게 되었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 청년의 급여가 제 것보다 많았던 겁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대표님에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대표님, 저보다 업무 경험도 없고 자격증도 없는 친구가 왜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건가요?"
순간, 대표님의 얼굴에 당혹감이 생겼습니다.
아마 제가 급여 대장을 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친구 집이 좀 어려워서 우리가 도와주려고 하는 거니 이해해 주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같은 직원인 나보다 더 받는 게 정당한 건가? 심지어 업무는 내가 더 많이 하는데..
그럼 나는 뭔가? 내 노력은?'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억울하다 못해 서러웠습니다.
물론 급여 책정은 회사가 정하는 거다 보니 제가 어떻게 항변은 할 수 없었지만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현장에서 더는 제 미래를 꿈꿀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대표님은 안 그래도 제 급여를 올려주려고 했다고 회유를 하셨지만, 이미 제 마음은 굳혀졌습니다.
첫 직장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돌아보면 쓰라리고 치욕스러운 기억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배움이었습니다.
사회복지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불공정은 얼마든지 일어나며, 스스로 지켜내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사회복지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