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을 그만둔 뒤 저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 현장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너무나 컸습니다.
억울함과 상처를 안고 퇴사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속에는 '한 번쯤은 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프랑스'였습니다.
책으로만, 영화로만,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접했던 나라.
사회복지정책이 잘 되어있는 나라 중 하나로 알려진 그곳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비행기를 내려 파리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때, 긴장이 풀리기도 전에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습니다.
가방 뒤에서 살며시 지퍼가 열리며 누군가의 손이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에 도착해 처음으로 탄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만난 것입니다.
다행히 중요한 여권과 돈은 다른 곳에 보관해 두었고, 가방 안에는 옷가지와 속옷밖에 없었습니다.
모른 척하며 버텼더니 결국 소매치기는 제 백팩 속 남자 속옷만 뒤적이다가 포기하고 사라졌습니다.
소매치기는 첫 날 뿐 아니라, 거의 매일 같이 마주해야 했습니다.
대중교통을 기다리거나 타고 있을 때는 여지없이 누군가 몰래 뒤에 다가와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하루는 관광지에서 집시들이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 돌아서는데, 어느샌가 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재빨리 집시들을 쫓아가 휴대폰을 돌려받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소매치기들을 만나면서 저는 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겹쳐 보았습니다.
안전망이 부재한 순간, 인간은 이렇게 쉽게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겁니다.
지하철 승강장을 내려섰을 때는 또 다른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늘 보던 반듯하고 깔끔한 플랫폼과는 달리, 곳곳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코를 찌르는 소변 냄새가 퍼져 있었습니다.
통로에는 노숙자들이 늘어져 있었고, 길을 막고 있거나 신문지에 몸을 감싸고 잠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저를 괴롭힌 건 화장실 문제였습니다.
한국의 지하철역 어디를 가도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지만, 파리에서는 공용 화장실을 찾기도 어려웠고 찾는다 해도 유료였습니다.
유료화장실에 돈을 내고 들어가거나, 식당에서는 무언가를 사야 화장실 열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이 좋지 않은 저는 몇 번이나 아찔한 순간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깨끗한 화장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 이것이 바로 복지의 출발선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절실한 권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의 경험이 불편함과 두려움만 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펠탑 앞에 섰을 때 저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설렘을 느꼈습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단순한 송신탑 같았는데, 실제로는 압도적인 규모와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높이가 아파트 80층에 달한다고 하는데, 그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파리의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찼습니다.
저는 미리 예매하지 않아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에펠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이곳이 파리다’라고 말해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섰을 때는 그 화려함에 압도당했습니다.
황금빛 문과 장식, 끝없는 정원과 호화로운 방들. 사치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황금빛 문을 지나며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공공 화장실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불평등의 현실.
사회복지사로서 앞으로 마주할 세상의 모순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습니다.
여행 전에는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의외로 현지인들은 친절했습니다.
영어가 서툴러도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길을 알려주었고, 제가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 먼저 다가와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사람을 향한 마음은 통했습니다.
복지라는 것이 제도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제 마음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소매치기와 불편한 화장실, 혼란스러운 거리의 풍경은 저를 힘들게 했지만, 동시에 에펠탑의 위용, 루브르의 설렘, 베르사유의 화려함, 그리고 사람들의 친절은 제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돌아와 다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복지는 거창한 법과 제도 이전에,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은 권리와 안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깨끗한 화장실, 안전한 대중교통, 따뜻한 시선 하나가 복지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다시 사회복지사로 나아갈 제 길을 단단하게 다져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