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던 날이었습니다.
아이의 심리상담에 동행하고 복지관으로 돌아왔는데, 평소와는 다른 공기가 흘렀습니다.
급히 복지관 안으로 들어가니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고, 아주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기를 옥상에서 던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후에 알게 된 사건의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발달장애 1급이었던 18세의 이 군은 걸음마를 하고 있던 21개월의 아기의 손을 잡아 3층 난간 쪽으로 데리고 갔고, 아기의 엄마는 다급하게 제지를 했지만 180cm에 100kg이 넘는 건장한 남자를 평범한 가정주부가 막을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결국 엄마의 눈앞에서 아기를 난간에서 그대로 던져버렸고 사건 직후 아기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같은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을까요?
제일 먼저, 가해자였던 이 군은 바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발달장애로 인한 심신상실을 법원에서 인정한 것입니다.
다만, 재발 방지를 위한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치료감호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다음은 이 군의 장애인활동지원사입니다.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활동지원이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장애인의 가족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일정시간 보호를 해주는 서비스인데,
발달장애 1급은 법률상 반드시 장애인활동지원사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건 당시, 반드시 같이 옆에 있었어야 할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없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같은 시간에 1명만 케어를 할 수 있는데, 당시 장애인활동지원사였던 A 씨는 자신의 딸도 장애인활동지원사 자격이 있는 것을 이용해 딸 이름으로 발달장애인 1급이었던 이 군까지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즉, A 씨는 본인의 이름으로 케어하는 장애인 1명과 딸 이름으로 케어하는 장애인 1명, 총 2명을 같은 시간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건 당시에도 본인의 담당 장애인을 케어하느라 사건이 벌어질 당시 이 군의 옆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기의 엄마는 A 씨의 딸을 일하지 않고 급여만 받아간 부정수급자로 고발하였지만, 결과는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으로 나왔습니다.
또한, 경찰은 A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하였지만 이것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활동지원사의 의무에 교육이나 훈계가 포함되지 않고 단순히 보조해 주는 역할이며, 평소에 이 군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을 예견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셈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습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닥을 뚫고 추락하면서 복지관을 이용하던 주민과 장애아동들이 지역주민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정문으로 드나들던 이용자들도 사건 이후 지하주차장 쪽으로 몰래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렸습니다.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자원봉사하던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젊은 사람이 좋은 일 한다고 고생한다며 격려해 주던 지역주민들이 이제는 아이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보여도,
"저런 애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위험해서 어떡해!"
하며 혼쭐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저도 모르게 아이와 밖을 나설 때는 사람이 없는 쪽으로 가는 등 최대한 눈에 안 띄게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버티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자원봉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사회복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성찰을 했습니다.
그 청년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건 분명합니다.
사건을 만든 이도, 피해 아기 부모도,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개인에게만 몰아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제게 복지는 사람의 행동만 보는 일이 아니며, 사람을 둘러싼 시선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자원봉사를 끝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진정한 사회복지현장의 맛을 보게 됩니다.
아주 매운맛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