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을 그만둔 후, 다시 사회복지사의 길을 이어가고 싶어 새로운 직장을 찾던 중 한 사회복지법인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이라는 이름은 그럴듯했지만, 그 성의 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회장님과 직원 둘, 그리고 저까지, 4인용 책상이 전부인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첫 직장의 상처를 딛고 사회복지사의 길을 다시 걷겠다 다짐한 저에게 주어진 두 번째 무대였습니다.
그곳에서 제 역할은 다양했습니다. 공동모금회 사이트를 뒤지며 사업 계획서, 일명 '프로포절'을 써내는 작가였다가, 회장님이 시의원들을 만나러 갈 땐 번듯한 수행 비서이자 운전기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습니다.
마치 짠 것처럼 두 직원이 동시에 퇴사했고, 인터넷 괴담의 주인공처럼 얼떨결에 제가 '팀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겨우 업무를 익힌 제가, 새로 들어온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서툴렀지만 필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안개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제가 밤새워 쓴 프로포절이 통과되어 수천만 원의 사업비가 들어오면, 회장님은 늘 '인건비'라는 명목으로 상당 부분을 떼어가곤 했습니다.
"내가 평소에 월급을 안 가져가니까, 이걸로 충당하는 거야."
그럴듯한 변명이었지만, 잘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초년생의 어설픈 정의감은 그럴듯한 명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퍼즐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회장님이 시의원 출마를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선거는 돈 먹는 하마였고, 그 여파는 남은 직원들의 생존을 위협했습니다.
월급은 밀리기 시작했고, 사무실은 창고 같은 더 작은 공간으로 밀려났습니다.
결국 한 명이 떠났고, 저 역시 더는 버틸 수 없어 퇴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제 결혼식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일주일 앞두고, 저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막대한 위약금 때문에 결혼을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공항.
설렘과 막막함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을 때, 아직 남아있던 여직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업무 인수인계 문제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제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팀장님... 회장님이 사무실에서 야동을 봐요. 심지어 저 들으라는 식으로 스피커로 엄청 크게 틀어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공간에 머무는 그 비좁은 사무실에서 야동을, 그것도 스피커로 틀어서 보다니요.
처음엔 아픈 환자의 신음소리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의 공포를 덤덤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증거를 확보해둔 상태였습니다.
바로 녹음 파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직원이 보내온 파일을 재생했을 때, 흘러나온 적나라한 소리는 제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실수로 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그 소리는, 전화벨이 울리자 아무렇지 않게 멈춰졌습니다.
50대 남성이 20대 여성 직원 앞에서 벌인, 명백한 권력의 폭력이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당장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하라고 소리쳤겠지만, 그때의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녀 역시 조용히 퇴사하고 싶다며 엮이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묘한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회장님이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그때 이 녹음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낙선했습니다.
그렇게 추악한 진실은 하드디스크 깊은 곳에 묻혔습니다.
정의가 정말로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날만큼은 악인이 패배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얼마전, 그 회장님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신문 속에는 인자해보이는 사진과 복지를 위해 희생한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구토감이 몰려왔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했던 그의 민낯을 기억하는 제게, 그 기사는 거짓으로 포장된 연극처럼 느껴졌습니다.
'복지'라는 단어가 이렇게도 가볍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허무감이 밀려왔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저는 다시 구직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워크넷을 열심히 뒤지던 저에게 자주 보이던 단어는 바로 '장기요양기관'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장기요양기관의 구인공고를 열어보았고, 그렇게 저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장기요양기관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진짜 사회복지사 인생이 시작될 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