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에서 순조롭게 경력을 이어간 지 1년쯤 되었을 때, 저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대표님이 다른 사업도 확장하면서 겸직하고 있던 센터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가 졸지에 센터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일개 사회복지사였던 내가 한 기관을 책임지는 센터장이라니, 비록 내 회사가 아닌 남의 회사에서 센터장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센터장이라는 직함이 박혀있는 명함을 볼 때에는 사회복지사의 정점에 선 것만 같은 우쭐한 기분 같은 것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 센터장이라는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임과 부담이 함께하는 자리라는 것을요.
이용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모든 대응은 제가 해야 했습니다.
또, 30대의 젊은 센터장이 저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생선배들에게 일에 대한 지적이나 피드백을 드릴 때면 항상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용자와 직원관리뿐 아니라 시설관리까지도 저의 책임이었습니다.
시설이 잘 작동하지 않거나 고장 났을 때도 제 돈이 아니다 보니 함부로 기사를 부를 수 없었고, 웬만한 문제는 기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대부분인 복지기관 특성상 직원들은 컴퓨터나 에어컨 등등 시설들에 문제가 생길 때면 항상 저를 찾아왔고, 저는 만능 수리기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저는 어떠한 전문지식도 없었기에, 인터넷을 참고하여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하거나 아찔한 상황들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하루는 조리사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해 주방을 가보니 싱크대 배수구에 설치된 음식물 분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사용해 과부하가 걸렸나 싶어 주방에 있던 쇠젓가락으로 억지로 돌려보기도 하고 했지만, 분쇄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억지로 돌리는 것을 포기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분쇄기 아래쪽의 리셋버튼을 누르면 해결이 될 수도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분쇄기를 둘러보니 마침 작은 구멍이 보였습니다.
그 구멍을 플래시로 비춰보니 마침 빨간색의 무언가가 보였고, 리셋버튼임을 확신했습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기에는 구멍이 너무 작았는데, 마침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이 구멍에 딱 맞았습니다.
쾌재를 부르며 젓가락을 구멍에 넣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가버렸습니다.
제가 찾았던 구멍은 리셋버튼이 아니었고, 아마도 모터 근처의 통풍구로 전기가 흐르는 모터를 쇠젓가락으로 그대로 찔렀던 것입니다.
전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었기 때문에 차단기를 내리지 않고 점검을 했었고, 그것이 감전 사고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누전차단기가 작동하여 바로 전기가 차단된 덕분에 손이 저릿한 것 이외에는 큰 부상 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프린터의 잉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잉크선을 만지다가 프린터 내부가 잉크 범벅이 되어 결국 못쓰게 되어버리기도 했고, 수도를 잠그지 않고 수도꼭지를 교체하려다 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부장, 사장 이런 사람들은 항상 멋진 정장을 입고 서류에 결재만 하면 되던데, 현실을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상 앞에서 지시만 내리는 상상 속의 센터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고, 고치고, 달래고, 대신 사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센터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물어보기보다는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센터장은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감전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전기 새듯이, 매일 고장 나는 복지현장에서 버티며 일하고 있습니다.
감전된 센터장, 오늘도 누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