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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디자인에 결여된 것은 무엇인가

디자인에서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는법 - 박서연

1. 

미국의 애플, 이탈리아의 람보르기니, 스웨덴의 이케아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한 번씩은 수업을 통해 접하게 되는 교과서적인 브랜드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브랜드가 표방하는 디자인적 심상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 (예시로 애플을 생각하면 미니멀하고 단순한 제품의 형태와 직관적인 ui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수업에서 이와 같은 디자인 사례들에 대해 소개해주신 후 , 교수님들께서는 종종 우리나라의 디자인 현실이 아쉽다는 말씀을 덧붙이시곤 하신다. 아직 한국에는 이처럼 뚜렷한 디자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존재하지만, 이들의 디자인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 나아가 한국의 정체성을 잘 대표해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적이다.

이에 대한 예로는 삼성과 애플의 디자인 소송을 들 수 있다. 2011년 애플은 둥근 모서리를 가진 제품 디자인, 화면 주변의 테두리, 격자 형태의 앱 배열 등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 측은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4년을 투자했는데, 삼성은 단 3개월 만에 디자인과 UI를 베꼈다’고 주장하였으며,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삼성을 ’카피캣’이라고 칭하며 비난하였다.

치열한 공방을 펼치며 전개되었던 이 소송은 2018년 애플의 소송취하로 막을 내렸으나, 삼성의 디자인은 애플의 모방이라는 ’패스티시’의 이미지를 얻으며 격하되었다. 이 사건은 애플과 삼성이 두 기업 간의 분쟁을 넘어서, 한국 디자인계에 모방과 디자인 독창성에 관한 이슈를 불러일으는 신호탄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한국의 디자인이 전부 패스티시이고, 별로라는 주장을 하고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디자인이 새로움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형태의 답습을 택하며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급격한 산업화를 거쳤다. 고도 성장의 흐름 속에서 디자인의 모방은 앞선 선두 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자,  제품을 보다 있어보이게 만들어 더 많은 수출을 이루어내는 수단으로써 존재하였다. 불과 1993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제품 디자인 중 자체개발한 것은 25%에 불과하였으며, 대부분 OEM이나 외국 제품의 모방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을 벌이는 한국의 디자인 시장의 모습은 지난 3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독창적이고 새로운’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모방을 통해 기존에 높이 평가받던 디자인과 시각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이 제품은 비슷한 수준의 사용자 경험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방에는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모방이 원작과 동일한 정체성과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으나, 나는 이 당연한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매튜 키이란의 책 <예술과 그 가치>에 따르면 복제본과 원작의 가치 차이는 작품이 재현하고자 하는 현실과의 연결관계 속에 있다. 예술가는 본인만의 독창적인 재현의 수단을 통해 현실의 단편을 전달하려 노력하며, 이 노력 속에서 재현의 수단과 현실의 풍경 사이 연결 관계가 생긴다. 원작의 예술적 성취는 바로 이 연결성에서 기인한다. 연결 관계가 없는 복제본은 미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으나, 예술가가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현실을 재현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위대한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예술과 그 가치>에서 말하는 바를 디자인에 적용해 보았을때, 왜 원작 디자인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모방된 디자인은 쉽게 가질 수 없는 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바로 현실 세계와 연결 관계의 유무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현실의 삶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어떠한 디자인을 해내야 하는가’에 대한 그들만의 독창적인 기준을 만들어 낸다. 이 기준의 일관되고 정직한 실현이 곧 브랜드만의 디자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어떻게 디자인 정체성을 확보해왔는지도 이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이케아의 탄생 당시 스웨덴은 2차 세계대전 겪은 이후 위성도시를 건립하고 있었다. 도시의 통일된 디자인을 위한 밝고 경쾌한 인테리어의 필요성이 제고되었으며, 실용적 가구에 대한 수요도 크게 증가하였다. 꾸밈이 없기에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이케아의 디자인은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애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가 개인보다는 기업을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던 90년대, 애플은 개인의 혁신을 돕는 도구로써의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매킨토시를 디자인 하였다. 애플이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가치는 단순하고 깔끔한 기기의 형태, 기능들 간의 연결성을 강조한 직관적인 UI 등 디자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이케아의 슬로건 ‘democratic design’. 이케아는 다수를 위한 합리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한편 디자인이 추구해야할 현실과의 연결성을 간과한 채 그 고민의 산물인 외형만 모방한 상품은 근본적인 정체성에서 문제를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삼성과 애플의 디자인 분쟁이 발발했을 당시, 현대의 오준식 디자이너는 <월간 디자인>을 통해 아래와 같은 인터뷰를 남겼다. 

삼성전자라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전 세계인을 상대로 준비하는 제품의 철학은 무엇인지, 디자인계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이 현실이 매우 아쉽다. 삼성전자의 기업 철학에 대해 깊이 동의하거나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도 잘 알지 못하는 의중을 예측하며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실의 어떤 측면을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만들어진 디자인은, 당연하게도 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우선 ‘있어보이게’ 만들어 놓은 이후, 왜 이 디자인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수용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한 답을 디자인 스스로가 해낼 수 있을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3. 

결론적으로 디자인의 정체성과 독창성은 단순히 제품의 외형을 통해 드러나는 개념이 아니며, 디자인이 현실과 맞닿아 있을때 창조된다. 교수님들께서 수업 중 현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하시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디자인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나와 나의 학우들을 향한 일종의 다그침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만의 디자인적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 없는 고민을 이어나가야하며, 이에 대한 답안은 언제나 우리의 현실 삶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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