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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디자이너를 뛰어넘을까?

디자이너가 인공지능과 공생하는 법 - 한상규

‘인공창의가 인간창의를 앞지른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이야기하는 2045년의 모습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으로 정의된다. 이때 ‘새롭다’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다.’는 뜻과 비견된다. 이렇게 보면 마치 창의가 곧 새로움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chatGPT’, ‘Midjourny’ 등 OpenAi의 물결이 이어져오는 가운데, 인공지능의 창의적 업무 수행 능력이 빛을 발하게 되면서 창작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작가 및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는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미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대로 인간창의는 인공창의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일까.


인공창의와 인간창의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적지 않은 과제를 수행해온 나는 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백 개의 아이디어 중 한 개 정도의 아이디어만이 이를 충족한다. 사실 이것마저도 핀터레스트를 검색하다보면 꽤나 유사한 아이디어를 가진 디자인을 발견함으로써 종종 실패하곤 한다.

반면에 인공지능은 인간이 가히 담아낼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해낼 수 있다. 2주 전부터 시작된 서디연의 두 번째 정규 프로젝트 주제는 ‘N년 뒤’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첫 주차 과제로 디자인하고자 하는 미래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와야 했는데,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 ‘수면 종말 시대’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작성했고 스터디원들에게 공유했다. 이후엔 챗gpt에게 해당 시나리오와 관련된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했고,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미래 수면 종말 시대의 시나리오를 사회, 문회, 정치,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작성해줘’라는 부탁을 했다. 이내 단 몇초만에 나의 시나리오와 유사한, 오히려 보다 개연성 있는 글을 작성해낸 것이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속도 앞에 인간은 또 이렇게 무력해질 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일을 수행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고, 앞으로 더욱 견고한 업무 수행을 해낼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창의성이 과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에만 국한되는 특성일까? 우리는 대개 어떠한 결과물이 새롭다고해서 그것을 무조건 창의적이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창의성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즉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았을 때 이를 새롭게 여길 수는 있어도, 이를 진정한 창의에 대한 경이로 이끄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창의성은 그의 참과 거짓이 쉽게 구분되기 보다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판단 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공지능의 창의와 인간의 창의는 분명 다른 양상을 보인다.


‘순수형식지’로서의 인공창의

일본의 경영학자 노나카(Nonaka)와 타케우치(Takeuchi)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은 크게 ‘형식지’와 암묵지로 나눌 수 있다. 객관적으로 측정 및 관찰이 가능한 지식이 ‘형식지(explicit knowledge)’이며, 개개인의 독특한 노하우와 주관적 경험으로 구성돼 있어 외연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은 ‘암묵지(tacit knowledge)’이다. 형식지는 언어를 통해 쉽게 기호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식인 반면, 암묵지는 언어적으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워 머릿속에 존재하거나, 조직문화나 풍토 속에 내재하는 주관적 지식이다.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의 지식은 기본적으로 컴퓨터 언어에 의존하므로, 그들은 형식지만을 습득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면,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창의는 오직 ‘새롭다’와 ‘새롭지 않다’로 쉽게 구분되는 형식지로서의 모습만을 띤다. 이는 인공지능이 형식지만을 활용해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조합해 새로운 결과값을 도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인공지능의 창의는 ‘순수형식지’로서의 창의이며, 이는 다분히 가시적인 것에 국한된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창의를 형식지와 암묵지를 모두 활용해 판단하게 되며, 형식지에 따라 ‘새로움’의 범주 안에 들었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경험 및 그들이 속한 집단에 내재하는 암묵지에 의해 이는 창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인간에게 창의는 단순히 ‘새로움’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창의에는 새로움 외에 무엇이 담겨있는 것일까?


‘공감’으로서의 인간창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렇기에 예술을 향유하는 데 있어 ‘새로움’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새로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예술을 향유할 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담긴 일련의 메시지를 찾게 된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될 수 있으며, ‘공감’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학기 제품 디자인 수업에서 의자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수업을 이어오던 중 개인 컨펌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이미 아름답고 좋은 디자인이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제작 의도와 그 속에 담긴 시나리오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 제품을 만들게 된 의도는 무엇이고, 만들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싶었는지 등 디자인에 담긴 숨은 이야기가 디자인을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디자인을 포함한 여러 창작 활동은 새로움 및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공감이라는 것은 ‘자아를 통한 세상의 인식’ 과 그를 통한 ‘경험’ 이라는 암묵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이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결국, 인간의 창의는 ‘공감’으로서의 창의가 되는 것이다. 이때 창의는 단순히 새로움으로 치환되지 않으며, 새로움은 창의 안에 포함되는 개념이 된다.


결론

인공창의가 인간창의를 앞지른다는 예견은 명백히 거짓은 아니다. 다만, ‘창의’의 개념을 단순히 ‘새로움’의 영역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미래의 세상은 인공창의가 인간창의를 대체하기 보단, 그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히 형식적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면 인간창의는 그것에 공감과 경험을 더하여 새로운 창의를 만들어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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