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예쁜 디자인을 만드려는 사람들에게 - 장세영
디자인의 목적을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이라 하면 가장 먼저 ‘어떤 대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직관적 감상의 측면에서 심미적인 것은 물론, 가독성, 시인성, 직관성 등을 고려하여 그 디자인을 읽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잡지의 레이아웃을 디자인할 때는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글씨 크기에 차등을 두고, 같은 분류의 내용을 비교적 좁은 간격으로 배치할 것이다. 리모컨을 디자인할 때는 어떤 버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한눈에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디자인의 또 다른 목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사용성’이다.
예술 작품과 다르게 디자인은 보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차이를 두자면 예술은 본인의 철학을 작품으로써 표현하는 것이고 그의 사고 과정은 수용하는 사람과 무관하다. 반면 디자인은 아무리 예술적 디자인이라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상황을 분석하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자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특히 상업적인 제품의 경우 구매자가 기대하는 것은 ‘이 제품이 나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바꿔주는가’이기 때문에 제품 디자인에서는 편리성이 그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편리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편리한 제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먼저 그 제품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적어야 한다. 텀블러 뚜껑을 닫았는데도 물이 자꾸 새서 계속 확인해야 한다던가, 똑같은 버튼을 눌렀는데 어쩔 때는 열리고 어쩔 때는 안 열린다던가 하는 불확실한 예측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안전성에 대한 신뢰 역시 밑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어떤 기능을 행하기 위해 사용자가 할 노력이 적을수록 좋다.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버튼은 바로 옆에 배치해 행동의 범위를 줄이거나, 애초에 한 버튼만 눌러도 자동으로 연속 수행되도록 하여 행동의 가짓수를 줄이면 사용자가 에너지를 덜 소비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제품은 사용자의 실수를 허용해야 한다. 조금만 삐끗해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는 제품은 완벽한 행동을 요구하여 사용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용성이 고려된 디자인의 예시로 디터 람스의 계산기가 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Less, but better’로 대표되는 그의 철학에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제품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지향이 담겨 있다. 그가 디자인한 계산기는 많은 버튼에 비해 간결한 표시, 색을 이용한 기능의 구분으로 쉽고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파악할 수 있으며, 충분한 여백으로 잘못 누를 일을 줄이면서도 버튼을 충분히 볼록하게 만들어 원하는 버튼은 빠르게 누를 수 있다.
애플 역시 그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계산기의 디자인은 UI에 차용할 정도였고, 아이폰, 아이팟 등의 디자인에도 그를 참고했다고 전 수석 디자이너 조나던 아이브가 말한 바 있다. 사용자 경험을 디테일에 디테일까지 고려하는 애플의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기술과 감성의 적절한 조화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데, 디터 람스의 철학이 이렇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디자인이 본질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디자이너가 먼저 고민해 ‘편리한 디자인’을 하면 소비자가 할 고민과 불편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을 표할 수 있다.
제품을 편리하게 만들고자 한다는 출발점은 발명도 디자인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전구를 디자인이라 하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육각으로 만들어진 연필은 분명 우리를 편리하게 했지만 그걸 발명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 둘은 어떤 차이인가? 단순히 선진 기술의 적용 여부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킨 정도의 차이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디자이너 역시 분명 편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위에서 고민의 방향을 다뤘다면 이제 그 고민의 과정을 볼 차례이다. ‘무인양품’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살펴보자. 이들은 제품을 판매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에게서 제품의 어떤 점이 생활에 도움이 됐는지, 어떤 점이 어떻게 불편했는지 등 직접 피드백을 받는다. 그리고 이를 반영해 제품을 계속 발전시킨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구체적인 사용자 시나리오를 확보해 이 제품을 사용하면 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그 결과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할 수 있게 됐다. 한 사례로 어떤 고객이 ‘토스트기는 어차피 벽에 붙여 놓고 쓰는데 식탁 위에 있는 다른 제품들이 제각기 다른 곡률을 가지고 있어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주자 직육면체에 가까운 토스트기를 제작했다.
이처럼 편리한 디자인은 기존의 제품이 사용자의 생활을 어떻게 불편하게 하는지 찾고 그를 해결해 생활이 보다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한다. 즉 발명이 불편한 상황에 대한 해결이라면, 디자인은 특정 상황을 넘어 이 제품과 함께 사용자가 더 편리한, 더 편안한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을 담는 과정이다. 모두에게 선보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뒤돌아보며 보완하는 과정이다.
편리함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으레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논리적 문제 해결 사고를 거친 이성적인 접근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발명이 아닌 디자인이므로,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의 형태에서 이 제품을 사용할 것인지, 우리가 그 사람의 생활에 어떻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 마음이 담겼을 때 제품은 순간을 넘어 삶과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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