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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몬스터의 성당, '하우스 도산'

하우스 도산이 핫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권솔

인터넷의 발달과 전례 없는 펜데믹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판매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코로나가 다소 진정된 현재까지 이러한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온라인 스토어가 오프라인 스토어에 비해 갖는 장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제품을 꼼꼼하게 비교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으며, 리뷰를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시장은 오프라인 시장에 비해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에 유리하다. 따라서, 오프라인 스토어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온라인 스토어의 편리함을 능가하는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 스토어의 존재 이유와 공간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그들의 공간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젠틀몬스터‘는 아이웨어(eye wear) 브랜드이지만 과감한 컨셉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슬로건은 ’세상을 놀라게 하라‘이며 그들의 공간은 ’충격과 동경‘이라는 키워드로 집약된다. 한마디로, 공간이 사람들에게 충격적 체험을 제공하여 정서적으로 고양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슬로건과 이를 실현한 공간을 통해 앞으로 오프라인 판매공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브랜드의 추상적 가치를 형상화하여 공간을 통해 구체적 경험의 형태로 제공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고객은 공간에서 브랜드의 철학을 경험하고 스토리를 소비하는 과정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성을 가진 공간은 사실 온라인 통신판매가 활성화되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젠틀몬스터의 공간은 가히 혁신적이지만 활용 전략 면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추상적 내러티브의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로열티를 이끌어내는 공간‘은 상당히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종교적 건축물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종교적 공간에서 사람들이 신성함이라는 비물질적인 가치를 물리적 형태를 통해 감각한것은 추상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간을 통해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위해, 젠틀몬스터의 국내 스토어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의 공간구성을 분석하며 브랜드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성당‘을 건설하는지 알아보자.


전이공간 

종교적 건축물에는 '전이공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외부공간을 '속', 예배공간을 '성'이라고 할 때, 전이공간은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동시에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전이공간에 들어서며 내면의 세속적인것들을 내려놓고 성스러운 공간에서 신을 마주할 준비를 하게된다. 이 과정에서 전이공간은 이전까지 속해있던 세속의 공간에서 방문자를 분리시키며 동시에 그 공간만의 특별한 시간성과 공간감을 제공한다.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의 1층은 전이공간의 성격을 띤다. 이 공간은 기존의 오프라인 스토어와는 크게 괴리되 모습을 하고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매장은 간데없고, 철거 직전의 폐건물같은 공간이 고객을 맞이한다. 아무것도 모른채 매장을 방문한 고객은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매장의 내부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이 현재 위치한 공간의 성격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매장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특별한 체험을 통해 현재의 공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전이공간의 역할과 유사하다. 젠틀몬스터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하우스 도산의 1층에 대해 '기존 리테일공간 1층이 가지는 고정적 개념과 잔상을 바꾸기 위해, 기능과 효율을 포기하고 새로운 감정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혔다. 현실에서 괴리된 내부 모습을 접한 고객은 일상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시간에 속하는듯한 느낌을 받게되고, 공간을 더욱 생경하게 감각하게 된다. 비일상적 공간이 제공하는 일탈적 체험을 통해 새로운 감정이 일깨워지는 것이다.


주체적 시간성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의 3층은 콘크리트와 철제를 사용하여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다. 이 사이를 걸어 다니는 거대한 6족보행 로봇은 이러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마치 미래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 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풍경이 주는 충격과 함께 새로운 지평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시간의 객관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공간구성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각을 제공하는데 이는 종교적 공간에서 드러나는 '주체적 시간성'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주체적 시간성'이란 종교 공간에서 초월적 존재인 신을 체험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성이다. 시간의 자연적 흐름에 상응하는 '환경적 시간성'을 뛰어 넘어, 신의 창조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규정되지 않은 초월적인 시간들을 개인의 감성에 따라 주체적으로 감각하는 것이다. 주로 스테인드글라스나 천장으로부터 들어오는 강한 빛 등이 공간에 주체적 시간성을 부여한다. 주체적 시간성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당시의 기분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기도 하고 특정한 시간대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러한 공간에서 진입한 사람들은 그 공간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끼며, 오랫동안 공간에 머물고 싶어한다.


상징 

종교적 공간에 위치한 다양한 사물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평범한 사물에 불과하지만 성스러운 공간의 맥락에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는 속된 세계와 분리되며 의미를 갖게된다. 이 사물들은 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종교적 내러티브를 집약적으로 전달하며, 종교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젠틀몬스터의 플래그십스토어에 진열된 제품도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사용된다. 그들의 제품은 평범한 아이웨어에 불과하지만 총체적 공간의 맥락속에 놓였을 때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매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혁신적이고 기묘한 이미지의 향연이 제품에 그대로 투영되면서 진열된 제품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담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게 된다.


성현

 종교적 공간에서 신성함을 체험한 이들은 일상적 공간으로 돌아와서도 그 당시의 경험을 계속해서 상기하며 일상적 사물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이를 '성현'(hierophany)이라고 명명한다. 그에 의하면, 종교적 인간에게 자연은 결코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우리가 영위하는 세계의 모든 것들은 신의 피조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이때문에 종교적 인간은 일상 속 사물을 초월적 실체의 현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브랜드의 제품을 브랜드와의 연결고리로 여기며 단순한 제품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브랜드 공간에서의 경험과 제품을 연관 지으며 제품을 통해 당시 경험했던 환상적인 체험을 연상한다. 이처럼 제품에 대한 주관적인 환상을 품는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은 더욱 다채로운 상상으로 가득 차게 된다. 브랜드 공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서도 제품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언제든지 꿈의 세계를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

상업적 목적을 지닌 플래그십 스토어와 신성한 종교적 공간을 연결 지어 분석하는 것이 공간의 본래 목적을 고려하지 않은 비약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다를지라도, 무형의 가치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의도로 구성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두 공간을 연결 지어 분석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 유럽의 성당에서 젠틀몬스터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이어지는 공간의 계보를 톺아보며 앞으로 오프라인 공간이 추구해야할 방향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참고문헌

김태룡, and 김기덕. "성서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공간콘텐츠 기획 전략 - 미국 플로리다의 ‘홀리랜드 익스피리언스’ 사례를 중심으로." 종교문화연구, no. 32 (2019): 93-118.

이진경, Lee Jin Kyung, 김문덕, and Kim Moon Duck. "한국 기독교공간에 나타난 종교현상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M. 엘리아데의 종교현상학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18, no. 2 (2017): 501-14.

Eliade, Apostolos-Cappadona, 박규태, and Apostolos-Cappadona, Diane. 상징, 신성, 예술 / M. 엘리아데 지음; D. Apostolos-Cappadona, Diane [편] ; 박규태 옮김., 2005., p.191

“젠틀몬스터 공식 웹사이트”, 2022.11.24. (https://www.gentlemonster.com/kr/store)

“젠틀몬스터는 어떻게 10년만에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됐을까?”, 브랜드 브리프, 2021. 9. 10., 2022. 11. 24.,(https://www.brandbrief.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15)

“브랜드의 세계관을 연결한 퓨처 리테일을 꿈꾸다: 하우스 도산”, SPACE, 2021. 4., 2023. 4. 20.,(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M5OA==)

“브랜드를 오감으로 경험하게 만든 공간…이곳에서 오프라인의 미래를 봤다”, The JoongAng, 2021. 8. 29., 2023. 4. 20.,(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2386#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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