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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반드시? 유니버셜 디자인?

우리가 유니버셜 디자인을 망치는 이유-노희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부생, 또는 디자이너라면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당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혀 있을 것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으로 누구나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통 ‘유니버셜 디자인’을 떠올릴 때 ‘모두를 위한 디자인’ 보단,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을 떠올리기 일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나는 그 ‘당연함’이 유니버셜 디자인의 발전을 막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디자인을 시작할 때, “‘유니버셜 디자인’을 하고야 말겠어.” 라는 사고에서 시작하는 것은 곧 특정 집단에게만 맞춘, 그들만을 편리하게 해주는 디자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왜 유니버셜 디자인이 필요한가? 저마다 각각의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아직 학부생인 나와 다른 친구들의 경우 유니버셜 디자인은 ‘그것을 꼭 하고야 말겠어’ 와 같은 당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우리는 가끔 그 당위성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그 이유와 필요성을 고민하다보면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을 되짚어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고의 구체적인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상’을 미리 선정한다.


대상은 곧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너무 많고, 각각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변인들이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지 떠올려 보자. 그러면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한층 더 쉬워진다. 나는 지난주 전공 수업 시간에 각자 한 주간 관찰한 주변인의 다양성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학생은 본인의 할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분은 시력이 좋지 않으셨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신체적 노화를 겪고 계시는 분이었다. 그 학생 다음 순서로 대상을 발표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리고 나는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관찰한 인물은 동생이었다. 내 동생은 안경을 벗으면 코 앞에 있는 물건조차 식별을 못 할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다. 그 애의 나이는 만 18세 고등학교 3학년이다. 그리고 그 애는 허리가 좋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애는 아직 20세도 되지 않은 청소년이다. 내 순서가 끝이 나고 그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사고의 변화와 같은, 눈빛의 변화와 같은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70대 노인과 10대 청소년이 가지는 신체적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예상했더라도 이렇게 직접 대조해서 공통점을 찾은 경험은 분명 새로웠을 것이다. 10대는 건강하고, 70대는 노화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이다. 나는 그날 70대 노인과 10대 청소년이 느끼는 불편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머릿속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검은색 점과 하얀색 점을 떠올려보자. 그 사이에 공백은 반드시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보통 유니버셜 디자인을 생각할 때 이 점 두 개에서 시작한다. 극단에 있는 흑과 백의 점 두 개로 판단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그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두면 그 사이 무수한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은 배제하게 된다. 이제 그 점 두 개를 이어보자. 그러면 점과 점 사이 무수한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을 만들어낸다. 즉 긴 스펙트럼이 생겨나게 된다. 점을 잇는다는 사고 하나로 그 사이 공백을 채우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의 능력들은 이 긴 스펙트럼 위에 있다. 언제나 다른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언제나 이전과는 다른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에 처해있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대상을 상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대상을 특정하는 순간 유니버셜 디자인은 그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대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펙트럼 전체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꼭, 반드시? 유니버셜 디자인인가? 우리는 유니버셜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정립할 필요가 있으며, 그 시작점에서 최대한 많은 다양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하니까’의 강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고를 하는 것이 허울뿐인 유니버셜 디자인을 경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디자인 #유니버셜 디자인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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