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브랜딩 실패 사례를 통해 바라본 도시 브랜딩의 성공 요인 - 전수정
출처: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지난달 서울시는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인 ‘서울, 나의 소울(Seoul, My Soul)’을 발표했다. 이번 슬로건은 ‘서울’과 ‘소울’의 발음이 비슷한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도시 서울’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슬로건 디자인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10일 4가지 디자인 시안을 발표하고 디자인 선호도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조사 시작과 함께 각종 SNS에 슬로건 디자인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졌다. 한 시민은 SNS를 통해 이번 슬로건 디자인 후보로 제시된 두 개의 시안이 과거 서울시 ‘아이・서울・유’ 굿즈 상품 기획에 제안했던 디자인을 변형한 것이라는 주장을 밝혔다.
이런 반응에 따라 서울시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로 디자인을 뽑겠다고 밝혔다. 15일부터 6월 20일까지 공모전 홈페이지에 디자인 파일과 500자 이내 설명을 제출하면 된다. 새로 접수 받는 응모작은 본인의 창작물이어야 하지만 기존 4개 디자인을 수정・보완할 수도 있다고 한다.
브랜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인상, 이미지, 생각, 문자 등의 집합체이다. 브랜딩의 목적은 브랜드를 접하는 순간 사람들에게 브랜드의 인상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슬로건 디자인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슬로건은 문구, 이미지, 글꼴, 색 등의 요소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과 비전을 드러내며, 소비자가 슬로건을 보고 브랜드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도시 브랜드도 마찬가지이다. 도시 브랜드는 해당 도시와 시민의 정체성을 구축 및 강화하고 외부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도시의 다양성과 문화, 사회적 가치 등이 디자인에 반영되어야 하며 시민들의 정체성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도시 슬로건의 경우 짧은 문장 안에 도시의 인상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과연 현재 서울시의 슬로건들이 서울시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고, 서울 시민들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서울 시민은 해당 슬로건 디자인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충분히 대변하고 서울시의 문화와 다양성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할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해외 도시 브랜딩 성공 사례와 과거 서울시 브랜드 슬로건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 브랜딩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뉴욕시의 도시 슬로건 'I♥NY'가 있다. 'I♥NY'는 1977년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디자인한 로고로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욕의 상징이자 슬로건으로 역할해왔다. 1970년대 당시 뉴욕주는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파산을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파산 위기에 내몰린 뉴욕은 관광 활성화를 통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고 당시 뉴욕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밀턴 글레이저에게 로고를 의뢰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로고는 대문자 I, 빨간색의 하트 이미지, 그 아래 대문자로 NY가 아메리칸 타입 라이터체로 써져 있다.
딱 한 번 로고를 변형하여 포스터를 만든 적이 있다. 9.11 테러 이후 밀턴 글레이저는 슬픔에 빠져있는 뉴욕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디자인한 로고에 ‘MORE THAN EVER’ 이라는 문구를 추가하여 포스터를 디자인하였다. 이 포스터는 뉴욕 데일리 뉴스를 통해 뉴욕 시민들에게 전해졌고 시민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어 거리 곳곳에 붙여졌다. 새롭게 디자인된 로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 추가된 문구가 아니다. 하트의 왼쪽 하단 부분에는 불에 그을린 것 같이 보이는 점이 있다. 이 점은 뉴욕 맨해튼의 지도상에서 테러가 발생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위치한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이 점 하나로 밀턴 글레이즈는 ‘나는 그 어떤 때보다 뉴욕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나는 그 어떤 때보다 상처 난 뉴욕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바꾸어 뉴욕 시민들을 위로한 것이다.
슬로건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뉴욕 시민들의 도시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도 점점 커지게 되었다. 특히, 9・11 테러 당시 디자인되었던 포스터는 뉴욕 시민들에게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시민들을 위로하고 서로를 보듬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슬로건은 뉴욕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인들에게 뉴욕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전달했다. 관광객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컵, 티셔츠 등의 다양한 상품에 적용되어 관광객들에게도 뉴욕의 이미지와 연상되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뉴욕의 슬로건은 도시와 시민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대변하며,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 도시 슬로건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서울시가 ‘하이 서울(Hi Seoul)’이라는 슬로건을 공개한 2002년 부터이다. 서울시의 첫 브랜드 슬로건인 ‘하이 서울’에서 영어 인사말인 ‘Hi’는 지구촌에 밝고 친근한 서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양하고 활기찬 서울의 매력을 표현한다. 또, ‘High’와 비슷한 발음으로 대한민국의 수도를 뛰어넘어 세계 도시와 경쟁에서 서울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슬로건의 타이포는 밝고 친근한 인사의 의미와 일치하게 활기찬 리듬감을 갖는다. 알파벳 ‘i’ 양 옆에는 노란색 선을 이용해 마치 사람이 두 팔을 벌려 반갑게 인사하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이 서울을, 그리고 서울을 사람들을 반긴다는 인상을 전해준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삼태극의 적, 황, 청 3색을 이용하여 밝고 활기찬 느낌을 전하는 동시에 강한 임팩트를 준다.
다만 손으로 휘갈겨 쓴 듯한 모양의 ‘Hi Seoul’은 그 색과 함께 더해졌을 때 자칫 가볍고 유치해 보이기도 한다. ‘i’에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과연 서울 시민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반갑게 환영한다는 의미는 전달이 되지만, 그 형태가 서울 시민 혹은 서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2006년 추가된 ‘SOUL OF ASIA’ 문구가 주 슬로건인 ‘Hi Seoul’과 크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검정색으로 쓰여 오히려 아래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글자가 영어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 아쉽다. 도시 브랜드를 해외로 홍보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한글판, 영어판 두 가지를 병용하거나 혼합하여 사용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2012년부터 사용된 슬로건인 ‘함께 서울 - 시민과 함께 세계와 함께’에는 두개의 손이 서로 맞잡고 있는 형태를 하트 모양으로 표현해 이념, 계층, 지역 등에 제한 없이 모두를 아우르며 함께 손잡고 시정을 구현해나가겠다는 ‘통합’의 가치 철학을 내포했다고 한다. 시민과 서울시가 손 잡은 모습이면서, 시민을 향한 서울시의 마음을 하트 모양으로 형상화 하였다고 한다.
이후 2015년 서울시에서는 서울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서울의 정체성(서울다움)을 반영하고 시민이 공감하는 서울브랜드를 개발하고자 서울브랜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슬로건이 바로 ‘I SEOUL YOU’이다.
I SEOUL U의 경우 서울의 철자 중 가운데 오는 알파벳‘O’를 한글 옛이응으로 표현하여 한글을 포함하며 동시에 영어로 읽힐 수 있도록 하였다. I와 U 사이의 두 점은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울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슬로건이 특징적인 점은 ‘I’와 ‘U’ 사이의 ‘SEOUL’ 위치에 한글 위주의 국문 기본형 및 다양한 활용형을 제시한 것은 물론, 서울시에서 이를 빈칸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나만의 서울브랜드’를 그리는 행사도 진행했다는 점이다.
‘I SEOUL U’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문법에 맞지 않는다,’ ‘외국인에게는 자연스럽게 의미가 읽어지지 않는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반응 등 여러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서울 시민들에게 익숙지고 점점 서울시 브랜드로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늘었다. 2015년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새 도시 브랜드인 ‘아이 서울 유’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불과 11.9%에 불과했으나, 2021년 4월 온라인 투표・조사 서비스 ‘더폴’이 진행한 조사에서 ‘아이 서울 유’가 서울시의 브랜드로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0%이상이 ‘잘어울린다’고 답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23.3%였다. 새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친숙해진 지금,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또 변경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도시 브랜드 디자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위에서 살펴본 사례를 통해 브랜드 디자인, 슬로건 디자인은 단순히 도시의 이름이나 관광 명소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랜딩과 디자인은 형태적인 상징 요소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도시의 시민들이 그들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서의 기능을 가져야 하고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시민들의 정체성, 도시의 비전이 드러나야 한다. 이는 아름다운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마음이 담긴 디자인을 의미한다. 서서울의 브랜드 디자인은 서울 시민들이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수도 브랜드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 브랜드 디자인에서 도시와 시민들의 정체성은 시각적인 요소에 의해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삶을 통해 드러날 수도 있다.
브랜딩과 디자인은 그 자체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시간, 그리고 삶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처음 디자인을 접했을 때 그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이미지, 즉 첫인상이 일차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브랜드는 첫 인상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디자인과 사람, 브랜드와 사람이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경험들 하나하나 쌓여 사람들 속의 인식,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 처음 제시되었을 때는 낯섦에 기반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주지 못하더라도, 디자인과 브랜드는 인간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기에 사회와 사람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았느냐에 따라 그 인상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I・SEOUL・U의 경우에도 시간이 흐르며 ‘I・SEOUL・U’의 특이한 문법과 문장 속에서 ‘서울’을 동사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패러디를 만들어내며 시민들은 일상 속 유희를 즐겼다. 조롱도 많이 당했지만, 그만큼 서울 시민들에게 익숙해지고 가까워졌던 슬로건이다. 또 사용에 따라 그 의미가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다양한 방향성으로 브랜드가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브랜드에 ‘다채로움’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고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여줄 수 있다. 덧붙여,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으나,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제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받아들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상당한 시간이 지나 이미 시민들에게 친숙해진, 이제 겨우 서울을 상징한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만한 서울의 브랜드 슬로건을 다시 바꾼다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다.
브랜드 슬로건 디자인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시민들과 외부인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며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또, 지속적으로 변경되는 슬로건은 시민들에게는 혼란만 주고, 외부인들에게는 도시를 알리지 못하는 그저 허울뿐인 디자인이 될 뿐이다. 그러나 이미 새로운 슬로건이 발표되었고, 그 디자인이 공모중에 있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서울의 독특한 문화, 아름다운 경치, 다양한 사람들 등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슬로건을 탄생시키고, 그 슬로건이 서울시와 시민들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모전은 5월 15일부터 6월 20일까지 서울시 공모전 홈페이지에 디자인 파일과 500자 이내 설명을 제출하면 참가 신청이 된다. 함께 더 나은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이번 서울시 브랜드 슬로건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자료
송인아, <서울 슬로건 하이 서울 HI Seoul>, <<송인아 디자인 연구소>>, 2010.2.13., https://m.blog.naver.com/buluma2/80101887913 실버슈, <아이 러브 뉴욕, I♥NY(I Love New York)의 로고를 만든 밀턴 글레이저 별세>, <<엔터테인먼트 이슈&리뷰>>, 2020.7.3., https://silversyu.tistory.com/29 임인택, <시민에게 던져진 서울시 브랜드 ‘I∙SEOUL∙U’ … 부정적 패러디도 수용해 공모>, <<한겨래>>, 2015.11.25.,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19005.html 서울시 신규 브랜드 디자인 공모 -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https://www.seoul.go.kr/new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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