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주사 10화

전학

나, 다시 돌아갈래.

by 기억삭제



난 가방 싸기 시작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기계처럼 책상 속 물건들을 가방에 집어넣는 나를 놀란 그들이 말렸지만, 뿌리치고 내 물건은 휴지조각하나 남기지 않고 다 챙겼다.


다시는 여기 네모난 상자 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녀석이 같잖다는 듯, 가면 어딜 가냐고 비웃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정말 태워 죽일 듯 노려보았다.


"니, 지금 안 보내모 내가 니 쥑인삔다."


처음 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벌함이 뿜어져 나오는 내 눈빛을 녀석이 읽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XX 웃기고 있네, 내는 가마이 잇것나?"


그런데 이상하게 이제 더는 녀석에 대한 미움조차 생기지 않았다.




하교 시간도 아닌데 가방까지 싸 들고 온 모습에 놀란 엄마가 날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제야 딸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닌 걸 아는 눈빛이었다.


그동안 전학 이야기만 나오면 달래고 어르던 엄마였다.


지금에 와서 엄마의 입장에서 핑계를 대자면, 당시 새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가게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아 엄마도 걱정이 많아 넷이나 되는 자식들에 일일이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가끔 친구랑 싸웠다고 하면 다음 날 풀어지는 가벼움이라 생각하셨다. 그리고 학교이기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선생님의 보호아래 잘 해결되고 있을 거라 믿으셨다.

나 또한 열 대 맞은 걸 한 대로 줄여서 말하곤 했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녀석에게 당했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나서였다.


엄마는 먼저 내 생각을 물었다. 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모든 일을 젖혀두고 바로 전학 수속을 밟았다.


내가 엄마에게 마지막 손을 내민 정확한 시점에 그 손을 엄마가 잡아 주었기에, 그전에 원망을 눈 녹이듯 녹여 버릴 수 있었다.


삼 개월을 방치한 담임에게도 엄한 얼굴로 무슨 말을 했지만, 묻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하는 담임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담임의 핑계가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5년간 추억을 쌓았던 학교로 3개월 만에 돌아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조금 긴 등굣길로 인해 잠을 줄여야 했지만 행복했다.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6학년 5반 교실로 찾아와 '니는 마, 시계불알 맹키로 와 그리 왔다 갔다 해삿노! 인자 안 가제?'라며 반겨주는 5학년때 담임 선생님의 정겨운 농담도 반가웠다.


무엇보다 새로운 교실이지만, 익숙한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전학하고 얼마 후, 우리 집도 다시 이사했다.


새로 터를 잡은 지 반년도 안된 동네를 떠나,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인지, 생업에 가망 없는 동네를 가감 없이 버렸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떠 보니 학교도, 동네도 그리웠던 곳이었다.


그렇게 새롭게 바뀐 익숙한 환경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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