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주사 09화

선택

끝이 없는 몸부림.

by 기억삭제



결국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담임의 출장으로 자율학습을 하던 그날. 날아오는 주먹에도 익숙해지고, 쏟아지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비난에도 이력이 나고, 밟으면 털고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자, 녀석의 깐죽거림이 더해갔다.


나의 무반응에 흥미를 잃지도 않았다.

내가 보인 오기가 녀석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악착스럽게도 달려들었다.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칼날에 기어이 서로의 화를 폭발시켰고, 담임도 없는 교실에서 녀석과 나의 싸움은 극으로 치달았다.


책은 공중을 날아다니고, 연필과 지우개는 아무 데나 굴러 꽂히고, 가방은 바닥으로 패대기 쳐졌다.


말리는 쪽, 부추기는 쪽, 선을 넘는 패싸움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없는 교실에선 통제가 되지 않았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기어이 녀석의 주먹이 닿지 않았던 성역인 얼굴로 날아들려던 순간, 교실 문이 열리면서 천둥 같은 소리에 모두 얼음이 되었다.


"이노무 자슥들, 이기 먼짓들이고!!"




문을 열고 들어선 옆반 선생님 덕분에 싸움은 잠시 휴전이 되었다.


그들도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난장판인 교실을 보고 놀란 선생님의 한숨이 귀에 꽂히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난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리 막하는 나쁜 놈이었지만, 그래도 딴은 대장부라고 떠벌리는 허영이, 여자 얼굴만은 때리지 않는 자존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녀석의 주먹 방향이 얼굴이라는 것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마침 옆반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등골에 녀석과 같은 비열한 뱀이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옆반 선생님은 녀석과 나를 교실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담임과는 다른 훈계로 혼이 나자, 진심이든 아니든 난 처음으로 녀석에게 사과라는 걸 받았다.


마지못해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미안하다'는 네 글자가 진심이 아니라는 건 뻔했다.


사과하는 입과 눈이 따로 놀고 있는 녀석이었다.


옆반 선생님이 떠나면 망나니처럼 몸부림쳐댈 녀석의 모습이 그려지자, 요동치는 심장소리에 반응하는 어깨의 들썩임은 더 요란해졌다. 그렇게 몸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옆반 선생님이 어르고 달래도 나의 울음은 쉬이 그치질 않았다. 마냥 나만 붙잡고 있을 수만 없는 선생님이 나를 양호실로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양호실이 아니라 이 건물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돌아온 교실에서 녀석은 입 밖으로 던진 사과의 대가라도 받으려는 듯 더 난폭하게 굴었다.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단순한 녀석의 행동에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눈과 코에선 비통함이 흘러내리고 입에선 악이 터져나가고, 귀로는 도를 넘은 녀석을 향한 비난이 날아와 꽂혔다.


그렇게 모든 구멍이 뚫려 제 구실을 하고 있는데도 숨이 막혔다. 도저히 더는 버텨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끝없는 굴레에서 이제 정말 선택해야만 했다.


이 거지 같은 네모난 공간을 탈출할 것인지, 죽은 것처럼 지내다 죽어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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