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주사 08화

버티기

오백 원어치 아량.

by 기억삭제



"니 내 돈 가가제?"


또 시작이었다. 녀석의 말도 안 되는 억지가. 대응할 가치도 없다 여긴 나는 수업이 끝난 책상정리를 마저 했다.


툭.

이제 가볍게 스치는 주먹은 간질거리는 수준이었다.


"XX 내 돈 내나라."


습관처럼 욕을 뱉는 한심한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무슨 개똥같은 소리고?"


"내 오백언 가갓자나!"


"봣나?"


"니 말고 누가 잇노?"


"내가 가가는거 봣나?"


"내 돈이라꼬 딱 표시 해놧다. 보믄 안다, 니 주머니에 있는 돈 내나바라."


나는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기가 짜증 나서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 녀석에게 보였다.


우연인지 녀석의 계락인지, 내 주머니에는 아침에 엄마를 졸라 군것질을 하기 위해 받은 오백 원 동전이 있었다.


아, 생각해 보니 앞번 쉬는 시간에 내게 말을 걸어온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끝에 엄마에게 받아온 오백 원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는 것이 퍼뜩 기억이 났다.


정말 진절머리 나게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녀석이었다.


"봐라, 오데 포시를 햇다글삿네? 이건 내끼다."


녀석은 눈앞에 들이댄 내 오백 원을 잽싸게 가로채서 가지고 가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이거바라 딱 걸릿다이, 1981이라꼬 딱 써 잇자네."


이제 정말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왔다. 동전이 나온 시기를 적은 연도를 자기가 표시한 거란다.


기가 차고 웃겨서 비틀린 내 입꼬리가 잠시 버벅거리자 녀석이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XX 이기 오데서 도둑질이고?"


"되도안한 소리 하지마라! 그라모 1981년에 나온 오백언이 다 니끼가?"


"하, 내끼다~ 그라니까 이것도 내끼다."


그 말은 바보 같은 녀석이 자기 말이 억지라는 걸 인정한 샘이었다.


"개똥같은 소리 하지말고, 내나라!!"


나는 녀석의 손에 있는 내 돈을 뺏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순순히 내어줄 녀석이 아니었다.


몸싸움에서 밀리는 나는 자리에 다시 앉아 녀석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람 쌤한테 일러라. 내가 니 돈 가갔다고, 그라고 그기 니끼라고 표시햇다케봐라!"


담임이 내편을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설마 녀석의 저 말도 안 되는 소리에도 방관을 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녀석은 담임에게 이르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던져본 말이었다.


예상은 맞았고, 이번에도 말싸움에서 진 녀석은 온갖 욕을 쏟아내면서도 이번 한 번은 봐준다는 밴댕이 같은 아량을 베풀었다.




"옴마 내 전학 보내도."


"갸가 또 뭐라켓나?"


엄마도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이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그러나 네모난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는 차마 엄마에게 다 말하지 못했다.


새로 이사 온 곳에서의 생활이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가게에 손님 또한 턱없었다.


엄마 아빠의 한숨소리가 작은방을 가득 채웠고, 옆에 있는 우리 네 남매의 공간까지 침범하는 날들이 많았다.


같은 사람이 하는 음식인데도 동네가 달라서 그런지, 전가게 손님들을 사로잡았던 맛이 통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님의 걱정스러움에 나의 고민거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렇게 이사한 동네는 두 달이 넘어가도록 우리 가족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녀석의 억지를 아직은 참을만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keyword
이전 07화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