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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복희 Jul 23. 2024

은밀한 햄버거 공장

 

은밀한 햄버거 공장@김복희


우리 식구는 비닐로 된 문방구집에서의 다사다난한 추억들을 뒤로하고 드디어 가게방이 딸린 어엿한 시멘트집 문방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창문이 있는 방과 밥을 할 수 있는 주방, 건물 밖 뒤에는 공용화장실까지. 갑자기 바뀐 환경이 낯설었지만 지난날 비벼락 사건 이후 부모님은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무리가 된 이사를 감행하셨다. 시골 변두리 문방구이긴 했지만 우리에게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다.  

   

이사 첫날     


이사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동생들과 엄마가 먼저 간 사이 나는 학교 전학절차를 마치고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저녁 늦게 이동하게 됐다. 캄캄한 밤길을 한없이 가는데 체감되는 시간은 몇 시간 거리 였던거 같다.

아빠한테 계속 물어봤다.

 “아빠 어디까지 가야 돼?”

 오토바이 엔진소리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무섭지만 더 말은 못하고 아빠 등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혹시 아빠가 말 잘 듣는 동생들 대신 나만 버리고 가려는건 아니겠지? 아빠 말 좀 잘 들을걸...’ 이사집으로 가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내 상상은 엉뚱한 길로 달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그때 아빠의 한마디

 “더 가야되는데 아는 집이라 지나가는 길이니까 잠깐만 들렀다 가자”

 ‘혹시 날 이집에 버리고 가려고 하시는 건가?’

내 상상은 이제 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아빠를 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지나는 길에 딸하고 잠깐 들렀습니다”

마지막 아빠의 클라이막스 연기력으로 나는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이런.. 또 속았다. 8년 동안 살았으면서 아직도 아빠에게 당하다니’

엄마와 동생들을 보면서 한방울 떨어지려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내 표정을 대번에 눈치 채고 엄마는 또 한마디 거드신다.

 “또 속았구만”.  

    

3층 침대     


우리의 새 보금자리는 안전하고 비벼락 맞을 걱정은 없었지만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작은 옷장과 텔레비전 공간을 빼놓고 다섯 식구가 발뻗고 자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지금도 이렇게 딱 붙어서 자야 되는데 자고 일어나면 한뼘씩 커있는 세 아이들을 보면 조만간 겹겹이 자야 되는 불상사가 불가피해보였다.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이건 아니다 싶으신 모양이다. 몇일 뒤 아빠의 초인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나무들을 사와서 몇 일 동안 자르기 시작하시더니 어느 날 조립되는 모양이 꼭 사람자기에 딱 좋은 사이즈다. 뼈대가 다 완성됐을 때 그제야 알게됐다. 우리 삼남매를 위한 3층 침대를 만드신 거다. 그것도 보름만에. 아버지의 사랑은 미라클을 만들어 냈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나 같이 행복한 아이가 있을까. 세상의 모든 사랑을 나 혼자 다 받은 느낌. 지금도 추억하면 다시 그 때의 설레는 마음이 생생하다.


드디어 3층 침대가 완성되던 날. 이웃집 아저씨와 아빠가 그 좁디좁은 방에 침대를 들여놨다. 동네 사람들도 다 같이 이 날을 기다렸다보다. 컷팅식이라도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행사장 그 자체였다.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심 으시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럴법도 3층침대 있는 아이가 우리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세상에 유일한 아빠표 3층 침대.


햄버거 공장     


침대가 들어오고 방에 거실 같은 공간이 생겼다. 거실이라고 해 봐야 엄마아빠 두 분이 누우면 딱 들어가는 공간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공놀이까지도. 또 하나 이 거실이 우리 문방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었다. 바로 햄버거를 만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햄버거를 만들어야 되는 배경에는 바로 벽 하나 사이에 붙어있는 경쟁 문방구가 있다. 우리 문방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미 많은 단골들을 확보하고 있었던 문방구는 어찌나 텃새가 심하던지. 아이들이 우리 문방구로 오려고 하면 옆집 아줌마는 강렬한 레이저를 발사한다.

 ‘감히 나를 배신하고 옆집으로 가겠다고’

그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순진한 아이들은 눈치껏 발길을 돌린다. 이런 분위기니 장사가 되겠는가. 그나마 눈치 없는 1,2학년 애들 몇몇이 천진난만하게 들어오긴 한다.

사태가 심각해지니 어느 날 엄마아빠는 우리를 앉혀놓고 가족회의를 하셨다.

 “우리 문방구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회의를 하는거야.” 분위기가 비장하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게 뭘까?”

모두 진지해졌다.

 “돈! 돈까스! 아이스크림!” 끝말잇기 놀이도아니고 애초부터 코흘리개 애들하고 무슨 가족회의. 회의가 산으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동생이 무심코 꺼낸 한마디.

“엄마. 나 햄버거 먹고 싶어”.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무시하고 넘어가는 찰나.

우리 아빠 예민한 통찰력으로 나이스 캐치하신다. “우리 햄버거 팔자!”.

시골에서 아이들이 햄버거 먹을 일이 잘 없으니 충분히 승산있는 도전이다. 모두의 찬성으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음날 아빠가 재료들을 사오시더니 그날 저녁 우리는 거실에서 테스트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엄마가 고기 패티와 계란 후라이를 구우면 내가 빵 위에 올리고 아빠가 양배추를 넣고 바로 여동생이 케첩을 뿌린다. 막내가 빵을 덮으면 아빠가 포장으로 마무리.

일단 비주얼은 그럴듯하다. 드디어 긴장되는 시식타임! 아이들 입맛을 알아야 하니 오늘 시식순서에 장유유서는 없다며 먼저 우리에게 건네신다. 사실 우리는 이러나 저러나 다 맛있다. 햄버거인데 뭔들 안 맛있겠는가. 엄마 아빠가 못미더우신지 한입 베어물고 한마디 하신다. “됐다!”.

우리는 성공을 확신하며 햄버거 판매 기원을 자축했다.  

    

다음날 몇 개 샘플로 만들어 놓은 햄버거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시식을 하게했다. 신세계를 맛본 듯한 아이들 표정에서 성공을 확신했다. 그날부터 우리 집 거실에서는 매일 밤 햄버거 공장이 돌아갔다. 체계적인 분업시스템으로 맡은 일이 능숙해지니 생산라인에 점점 속도가 붙는다.

햄버거 판매를 개시날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옆집 아주머니의 레이저에도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 문방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잘 팔릴지 몰랐다. 물량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르다. 생산 속도를 더 내야했다. 고사리 손까지 더해져 더 많은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하루 10개정도에서 나중에는 30개 정도까지 만들 수 있었다. 햄버거를 다 팔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만들었다. 다음날도 완판! 옆집 아줌마는 도대체 저 햄버거가 어디서 난건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설마 우리 다섯 식구가 만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다. 그래서 우리 공장은 더 은밀하게 돌아갔다. 아빠는 재료를 사 오는 날이면 옆집 아줌마가 볼 세라 옆집 문방구 불이 꺼지면 들고 들어오셨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의 은밀한 햄버거 공장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쓰라린 패배


오늘도 하교시간이 다가왔다. 설레는 햄버거 완판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옆집 문방구로 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엄마가 슬쩍 옆집을 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랑 포장까지 똑같은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유유히 우리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햄버거를 보는데 안에 재료까지 똑같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겠다. 아무도 우리집 햄버거를 사 먹지 않는다. 겨우 반 값에 반의 반값에 팔아치우고 남은 10개는 우리 식구 저녁식사가 되었다.

엄마는 

“애들아 만드는데 고생 했으니까 오늘은 2개씩 먹어도 돼! ”

이 많이 빠지셨지만 내색하지 않으시려는 목소리가 역력하다. 

동생들은 눈치 없이 신나서 먹는다.  

재료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 내일 팔 햄버거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은밀한 햄버거 공장은 우울한 마지막이 되었다. 

얼마 뒤에 안 사실인데 햄버거만 사 먹으러 온 단골 손님이 옆집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이 많은 옆집 아줌마한테 초등학생 아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다. 

스파이한테 열심히 햄버거를 판 셈이다. 

전세는 역전되고 우리 문방구는 다시 예전의 고요한 가게 집이 되어 있었다. 또 다시 고민이 시작 된다. 신메뉴로 다시 아이들을 끌고 와야 된다.

절박해진다. 

다음 메뉴는 뭘 만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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