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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Topic: 지역균형전형

국제시선신문 2023년 7월호 칼럼

by 국제시선신문

지역균형선발전형은 정말로 공정한가?


지역균형선발전형이란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서류 및 성적 평가와 면접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발하는 제도다. 지역균형선발전형은 교육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농어촌 또는 도서 벽지에 거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자 도입되었다. 이 입시 제도는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쉽게 명문대에 합격하게 해주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작년에 경기도에서 살고 있는 오랜 친구와 통화하던 도중 우리 학교에서 하고 있는 글로벌 리더십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서울의 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해주냐, 우리 학교는 그런 활동은 일절 없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교과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관심없다고 말하여 놀랐던 적이 있다. 과연 지방에 있는 일반고 학생들은 좋은 내신을 받는 것이 더 유리하니까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쉬울까? 물론 좋은 성적을 받아 일정한 내신 점수를 유지하는 측면에서는 지방의 일반고가 좋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서는 내신 성적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방의 고등학교 학생들의 인터뷰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학교나 지역 사회에 바라는 점으로 학교 선생님들이 입시 전문성을 갖추는 것과 제대로 된 입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꼽았다. 지원 자격이 충분해도 입시 정보를 구하는 방면은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서나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보니 학급 분위기는 산만하고 동네에서 과외 강사를 구하기 매우 힘들다. 학원도 많이 없어 학교 아니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외부로 빠져 나가 지역의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진다. 대학에 가려면 수능 최저를 맞춰야 하는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힘들다.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전형의 수능 최저 기준은 국어, 수학, 영어, 탐구 중 3과목 이상 각 2등급 이내이다. 이 기준은 상당히 낮다고 볼 수 있지만 2021학년도 지역균형선발전형 지원생 중 이 기준을 충족하는 학생은 56%밖에 되지 않았다. 수능 점수만으로는 학생의 성실도를 확인할 수 없고, 꼭 수능 점수가 낮다고 해서 학생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학교에서 2명만을 추천할 수 있기 때문에 실력있는 학생이 아닌 이상 이 전형에 지원하기 힘들다. 또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낮은 수능 최저 점수는 타당하고 생각한다.


수능 최저 점수는 낮고, 내신 따기는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공부 못하는 학생이 쉽게 명문대를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여 불합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의 학생과 지방 지역의 학생이 제공받을 수 있는 교육의 질과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섬들 (isle)


필자는 지역균형전형 (지균)에 대한 논의가 교육체계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나오는, 경쟁의 불합리함에 대한 반발보다도,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괴리로부터 표출되는 마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라나는 학생들을 경쟁시스템 속으로 몰아넣고 그들에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법을 주입시켜 자유롭게 사고하는 인간 대신 사회 속 톱니바퀴들을 양산해 내는 우리나라의 가혹한 교육을 문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이나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닌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문제이므로, 그것을 파고들기 시작한다면 길고 머리 아픈 글 끝에 남는 것은 실패한 사회주의자의 푸념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러한 원초적인 한탄보다는, 당장 우리가 직면한 지균의 논란이 우리 사회의 수도권 밀집 현상에 대해 어떠한 바를 시사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나는 서울 사람이다. 어머니는 부산사람이고 아버지는 광주사람이지만, 두 분은 나를 서울에서 낳고 키우셨다. 여행을 제외하면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나는 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수도권을 벗어났을 때 내가 누리지 못하게 될 것들을 떠올리게 될 정도이다. 미국인들을 놀리는 농담 중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세계 지도에 대한 농담이 있다. 지도 중심에는 대문짝만 한 미국과 캐나다가 위치해 있고, 양 옆에는 새빨간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와 아시아 (문명화되지 않음, 사람들이 서로를 먹는다), 오세아니아 (여기에는 용이 있다) 등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밈이다. 나는 나와 같은 서울 토박이들이 대한민국을 보는 시선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왼쪽 위에는 커다란 서울이 있고, 나머지는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그런 지도로 대한민국을 떠올리지 않을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장기화되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지게 된다면 지역에 대한 공정성 문제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지가 커질수록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침묵뿐일 것이다. 문제는 한 계층 아래로 묻히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모든 결정을 위탁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지균에 대한 토의가 진행될 때도, 정장 그 토의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지역, 비수도권의 교육시스템이 수도권의 교육에 비해 어떤 식으로 부족한지, 그에 따라 어떠한 불합리함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생산적인 결론도 도출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비롯한 서울 토박이들의 무지를 어떻게 거둬내고, 서울로 모두가,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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