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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늘 타인의 기분을 책임지려 했을까

죄책감으로부터 나를 되찾는 연습

by 가온담


타인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며 살아온 나날들.

누군가의 불편함을 내 잘못이라 믿었던 시간들에서 벗어나,

감정의 경계를 세운다는 것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선을 세우는 일이 어떻게 나를 회복시키는지 말해본다.




나는 오랫동안 타인의 감정을 내 일처럼 짊어지고 살아왔다.

누군가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말투가 날카로워지면,

그 불편함을 내가 풀어줘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기분이 풀릴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가 나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감정을 ‘풀어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상대의 불안과 분노의 원인을 고민하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대신 감당하려 했던 순간들


나는 늘 “관계의 평화”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대개 나의 불안을 담보로 세워진 것이었다.

상대가 나를 오해하거나 불쾌해할 때면,

나는 즉시 ‘설명’과 ‘사과’로 대응했다.

그 사람의 감정이 진정되면 내 존재도 괜찮아질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의 질투가 나를 향할 때


예전에 A와 B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A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었고, B는 A의 오래된 지인이었다.

나는 B와는 전혀 친분이 없었지만, 어느 날 셋이 함께 자리한 일이 있었다.


B는 내가 A와 친하다는 사실이 몹시 불편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B는 나를 향해 불쾌감과 비난을 쏟아냈다.

B의 감정에 대한 직접적인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았음에도,

그는 내 인격과 외모를 깎아내리며 분노를 정당화하려 했다.


나는 B의 감정이 본래 A를 향한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그 화살은 방향을 잃고 내게 꽂혔다.

그럼에도 나는 B를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B를 불편하게 만든 걸까?’

이런 죄책감과 미안함이 몰려왔고,

결국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A를 대신해 B의 감정을 해결하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친절이 아니라 경계의 붕괴였다.

A의 문제를 대신 떠안으며

나는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그건 ‘이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소멸의 과정이었다.




왜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때의 나는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상대가 불쾌하면 그건 내 탓’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누군가 화를 내면, 이유를 먼저 내 안에서 찾았다.

‘내가 그 사람을 화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설득하고, 달래고, 사과했다.


사실 정말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했었을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돌아올 불이익을 걱정한 것은 아닐까.


분위기를 흐리면 ‘버릇없다’, 자기주장을 하면 ‘이기적이다’라고 배워온 사회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무조건 순응해야 안전하다’는 방식을 체화한 채 살아왔다.

그건 나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오래도록 길들여진 생존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심리를 이용했다.

‘이 사람은 거절하지 못한다.

조금만 감정적으로 몰아붙이면, 스스로 미안해할 것이다.’

그 패턴을 알아차린 뒤에도 나는 즉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이해해 보자”는 도덕적 포장 속에

나는 나 자신을 계속 소모시켰다.




감정의 경계 존중


감정의 경계를 둔다는 건 거리감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건강한 구분이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타인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는 건 배려가 아니다.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는 있어도,

그것을 대신 해결할 수는 없다.

감정은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자기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내 감정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감정의 경계는 인간관계의 벽이 아니라, 존중의 선이다.

그 선을 그을 때 관계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선을 넘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분노 앞에서 주눅 들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의 감정이 나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성급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내 안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다.

“지금 나는 불편하다.”

그 한 문장을 솔직히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의 중심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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