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꿈이 나를 그리다
내가 어린 시절에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이 말을 제일 싫었다.
4남매의 맏딸이었던 나는, 여동생과 연년생 쌍둥이까지 돌보며 자랐다. 아기 셋이 한꺼번에 생긴 셈이다. 엄마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 갈고, 업어 재우고. 그러니까 아기가 아기를 돌본 셈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동생들 곁에 있었고, 나 자신은 늘 뒤로 밀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만의 꿈'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그저 착한 딸, 착한 언니, 누나로 사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안에서 조용한 꿈이 피어났다.
미술 교사가 되고 싶었다. 미술실에서 커다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도 저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 순간이 아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위한 꿈을 꾼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시골에는 그림을 배울 곳도, 형편도 여의치 않았다. 사범대를 가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교대도, 부산교대도 안된단다. 가까운 곳에 가라는 아버지의 고집에 결국 진주교대를 가게 되었다. 그때는 많이 서운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내 인생의 또 다른 색깔이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도 미술 시간은 늘 특별했다. 아이들과 함께 색을 섞고, 물감을 펴 바르고, 종이접기를 할 때면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의 나와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34년의 교직 생활, 정년을 7년 남겨두고 명예 퇴직했다. 퇴직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문화센터 수채화반과 발레반 등록이었다.
캔버스 앞에 앉아 물감이 종이 위에 스며드는 걸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결국, 나는 다시 그림 앞에 돌아왔구나.'
미술 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그림은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 이제는 취미로, 즐거움으로, 나의 시간을 채워주는 친구가 되었다. 어릴 적의 꿈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내 삶 속에 자리 잡았다.
나는 여전히 그림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 공부를 하며, 그림 속에서 나를 그리고, 또 내 인생을 색칠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