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봄바람 따라

다시 걷고 싶은 길

by 양정회

지칠 때면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하동 화개 십리벚꽃길이다.
첫 발령지였던 악양에 있을 때도, 하동읍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나는 해마다 봄이면 그 길을 찾았다. 꽃이 한창일 때도 좋았고, 꽃잎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할 때도 좋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람을 타고 꽃잎이 흩날릴 때다. 세상은 잠시 느려지고 나는 그 꽃비 속에 조용히 서 있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입구에 서면, 사오십 년은 더 되었을 벚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선 길이 나를 맞는다. 벚꽃 터널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어깨 위로 꽃잎이 내려앉는다. 꽃이 질 무렵이면 하얀 눈처럼 쏟아지는 꽃비를 맞으며 걷는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떨어지는 꽃잎을 잡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젊은 날의 내가 눈앞에 선하다.
요즘은 섬진강 강변을 따라 벚꽃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강물과 벚꽃이 어우러진 풍경 앞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창밖으로 스치는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으며 그 순간을 붙잡아둔다.
화개로 가면 쌍계사도 들른다. 산사로 들어서는 길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통로 같다. 바람 소리와 고즈넉한 기운이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화개 장터 전통시장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소박한 장터의 풍경은 언제나 정겹다.
그리고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는다. 창가 자리에 기대어 하동 녹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신다. 쌉싸름하면서도 푸릇한 향이 마음 깊숙이 번져간다. 잠봉뵈르 샌드위치로 허기를 채우며 차밭을 멍하니 바라본다. 초록 물결 위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차 한 잔의 온기가 지친 나를 조용히 감싼다.
올봄, 다시 그 길을 걷고 싶다. 꽃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푸른 차밭을 눈에 담고, 따뜻한 녹차 한 잔으로 내 시간을 녹여내고 싶다.
지칠 때마다 떠올리는 그곳은 어쩌면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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