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선풍기
벌써 한 해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왔다. 한해 한해 정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지만 사정없이 가는 시간은 늘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렇게 추석이 왔으니 그 순간마저도 즐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요새는 명절이라고 해도 이전의 분위기는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옛날에는 정말 가족끼리 오손도손 다 같이 만나는 자리,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대화도 나누고 정겹게 보내는 날이었는데 요새는 본가에 내려가거나 직접 찾아뵙기보다는 선물이나 통화 등 간접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물론 각자마다 사정이 다르고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문화도 사람도 그리고 시대도 바뀌어가는 것을 몸소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손목 수술을 하는 동안에는 본가가 아니라 병원 치료 때문에 타 지역에 있었다. 그리고 추석을 맞아 몇 주 만에 본가에 왔다. 얼마 안 되었는데도 뭔가 집이 낯설면서도 굉장히 편안한 느낌과 집에 거의 사람이 없는 편임에도 고양이 4마리와 함께 무언가 굉장히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우리 아가들인 냥이들과 멍하니 침대에 같이 누워있기도 하고 발톱도 잘라주고 간식도 주고 잠들어 있는 아가들의 모습을 문득 바라보기도 하고 그냥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가슴 한 구석이 굉장히 따뜻했다.
그러다 문득 바람을 만들고 있던 선풍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은 에어컨을 자주 켜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너무 더울 때 틀고 웬만해서는 선풍기를 쐬어왔다. 근데 아무래도 고양이들이 많기도 하고 먼지나 털이 많다 보니 선풍기에 까만 먼지와 털들이 엉켜있었다. 그래서 "이왕 쉬는 거 선풍기 청소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께서는 "괜히 힘드니 휴지나 물티슈로 겉에만 닦아도 돼"라고 하셨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분해를 하려고 하니 막상 에어컨은 많이 닦아봤지만 선풍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 순간에 엄마께서 "분해정도야 쉽지~"이러시면서 단번에 하나씩 보여주시면서 분해를 해주셨다. 그래서 원래도 참 엄마가 정말 멋있으신 분이다, 늘 혼자 척척 해내시고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다시 한번 대단해 보이셨고 한편으로는 그 강인함 안에 여린 엄마의 모습을 이제는 조금 쉬시라고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것이 현재 나의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아무튼 일단 분해한 팬과 부품들을 들고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솔로 문지르면서 닦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는 시간이 꽤 걸렸다. 이것이 눈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그러면서도 시원하게 씻겨나가는 먼지와 털들을 보니 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십 분가량 선풍기 팬과 함께 씨름한 결과 어느 정도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그래서 다시 물기를 다 닦고 차분히 하나씩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다 된 선풍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음 그냥 매년 있던 선풍기인데 "너무 신경 써주지 못했나"라는 생각과 이렇게 깨끗해진 것을 보니 이상하게 내 마음이 울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이 감사했고 몇 분 사이에 금세 깨끗해지는 선풍기를 보면서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늘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사람에게도 이렇게 까만 먼지나 털들처럼 힘들고 상처받은 부분들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면, 씻겨 나갈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힘듦이 있고 상처가 많지만 명절만큼만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든 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