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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Sep 29. 2021

1-1. 도저히 나를 어쩔 수가 없을 때

첫 상담을 받으러 가다.

    처음 상담을 받았던 건 학부 3학년이던 2014년도였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는 짓이었는데, 지도교수 상담 시간에 임상전공 교수님 앞에서 '열심히 하고 싶은데 왜 열심히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다짜고짜 엉엉 울었다. 냉철하고 노련한 교수님은 바로 그 감정을 받아주지 않고, 상담을 받아보라고 추천해주셨다. 20대 초에 자신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좋을 거라고, 교내에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을 때 가서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그 당시의 나는 크게 2가지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인간관계와 무기력증이었다. 당시 친구들과 같이 살다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에게 섭섭함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이 감정을 친구들과 어떻게 나누고 풀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내 마음을 지금의 관점으로 다시 관찰해보면, 친구들을 너무 사랑하고 싶고 나의 힘든 걸 공유하며 기대고 싶은데 사람을 믿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역설적인 내 마음이 버겁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지도 인식하지 못했고, 내 마음에 그들을 들이고 싶어 하면서도 초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불필요한 외로움까지 극화해서 느꼈다. 장필순 씨의 ‘난 항상 혼자 있어요.’를 들으며 혼자 눈물짓던 수많은 밤들이 떠오른다. 이 외로움과 상처의 시간이 다 사라져 가기를 바라면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나빠진 점 중에 하나는, 집에서 아빠가 또 술을 마신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나는 쉽게 무기력해졌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같이 살 때는 무기력해질 틈 없이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과거의 나는 내 감정 상태를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았고 잘 숨겨왔기 때문에 밝은 척을 하면서 어느 정도는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되면서 그런 균형이 모두 깨져버렸다. 집에서 아빠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전화를 받더라도, 집에서 일어난 일은 집에서 일어난 일로 남겨두고 현재 나의 일상생활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누워있었던 모습처럼, 나는 일상이 다 파편처럼 쪼개져버린 채로 집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뿐, 아빠와 다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무기력한 내 모습을 두고 아빠를 탓했다.


“아빠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지고 있는 거야. 내 책임은 아니야.”


    무기력하고 우울한 생활이 길어지면서,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주 박탈감을 느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고, 하루의 휴식도 없이 열심히 주어진 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 사랑, 우정, 집안 문제 등이 주는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목표를 향해 정진해 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은 왜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내야만 할까, 왜 매일매일 이겨내야 할 것들이 나에게 주어지는 걸까, 이 끝에는 대체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기에 이렇게 힘든 순간들이 반복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우울해만 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나약해 보여 더 우울하고 무기력해졌다.

그런 마음이 반복되던 어느 날, 나는 한강 작가님의 시를 읽으며 눈물을 쏟으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파란 돌


 한강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중략>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죽어있다는 걸. 나도 꿈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은 20대인데, 내가 쥐고 싶었던 파란 돌이 있는데, 우울에 고립되어 파란 돌을 잊고 있었다는 걸. 저 시를 읽는 순간 나의 파란 돌이 떠오르고, 파란 돌을 주우려면 다시 내 마음이 살아나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나는 지금 죽어있는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내 달궈져 상처 입은 마음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 그저 울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인생을 혼자만의 힘으로 악착같이 이겨내며 살아온 사람들의 단점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일으켜 세우며 걸어온 사람이기에, 누군가의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집불통이었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상담을 신청하러 갔던 건,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은 다르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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