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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Sep 27. 2021

0. 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알콜중독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글들을 쓰고 세상에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건, 내가 아빠의 알콜중독 문제로 지독히 힘들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얻고 싶어서 국내 대형 서점 사이트들에서 알콜중독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에 대한 심리서적이나 알콜중독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 대한 심리서적을 뒤졌었다. 그 때가 2014~2015년도였는데, 그 당시에는 알콜중독자를 가족으로 둔 구성원들의 심리에 대한 서적은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알콜중독자에 대한 심리 서적들만 즐비했다. 알콜중독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 알콜중독에 빠질 위험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돕기 위한 학문적, 대중적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이런 실태에 실망하며 차선책으로 아마존에서 알콜중독 가정에서 자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 2권을 구매해서 읽으며 위로를 받았었고, 내가 더 성장한다면 나 같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공감받을 수 있는 글을 국내에 꼭 내놓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중독가정 아이들에 관한 연구와 논의가 한국 심리학 및 정신의학계에서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 서적으로 책이 출간되지 않았던 이유는, 추측건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정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알콜중독’이라는 심리 질환은 의학적으로도 치료와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알콜중독 가정의 구성원’이라는 어떤 질병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그저 ‘특정 삶의 형태를 겪은 존재’라는 대상에 관한 관심은 누가 어떤 형태로 가져야 하는지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그들은 결국 스스로 그 상황을 이겨내고 극복해내는 수밖에 없는데,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우물에 빠진 사람은 시야가 너무 좁고 어두워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내기엔 벅차기만 하다. 하지만 우물에 빠진 그들에게 밝은 곳에 있는 누군가가 어디를 밟고 올라와야 하는지 알려주기만 한다면, 중독가정에서 악착같이 살아낸 이들은 그 힘으로 다시금 자신의 어둠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중독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크게 3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믿지 않고(Don’t trust), 말하지 않고(Don’t talk), 느끼지 않는다(Don’t feel). 제리 모의 책에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아빠가 술을 다시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과 기대가 반복적으로 좌절되고 나의 감정에 대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중독가정이라는 사실 자체가 콤플렉스로 작용하기에 상태를 말할 수도 없게 되며, 내 감정을 이해하고 들어줘야 하는 부모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점차 감정을 느끼지 않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 글은 내가 상담을 받으며 어떻게 감정을 느끼고, 타인을 믿게 되었으며, 그리고 신뢰하는 대상에게 내 감정과 상태를 말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에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공감할 보편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울고 웃으면서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이 책의 역할을 충분히 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더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리자면, 나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우물 속 여러분들이 지금 어디를 디뎌야 그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인식들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빨리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출간을 준비한 2020, 2021년도에 다시 한번 더 국내 서적을 검색했을 때, 관련된 주제로 2개의 대중 서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5~6년 사이에 알콜중독 서적 틈에서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책이 겨우 2권뿐이라는 것이 여전히 서글프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 심리학에서도 중독가정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더 많은 대중서적을 출간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서술하게 되었다. 또한 나처럼 중독가정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고, 과거로부터 물리적으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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