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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Dec 11. 2021

4-1. 함께이는 법을 몰라 자신을 버렸던 밤

너는 다른 삶을 만들어갈 수 있어

슬픔은 어느 순간에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내놓아야 하는 걸까.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밤이면 중학생이었던 나는 베개에 입을 틀어막고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다. 어두운 밤은 그림자가 긴 사람에게는 참 고마운 시간이다. 내가 아무리 짙은 어둠을 뿌려도 마치 그 어둠이 세상에 드러난 적 없던 것처럼 자신의 검은 치마폭 안에 감춰주니까.


    온몸으로 힘겹게 울어내야 하는 나의 감정은 내 자신에게도 너무 괴롭고 벅찬 슬픔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슬픔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상대방이 나의 감정 파도에 휩쓸려 떠나가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 슬픔은 내가 다 견딜 테니까, 이 무게를 짊어져주지 않아도 되니 곁에만 있어줘. 그게 내가 누군가에게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기대였다.


    혼자여야 슬플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다. 누구와 함께 슬퍼하는 법을 모르고, 슬픔을 말하는 법을 모르는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마련될 때까지 슬픔을 참고 또 참았다. 슬픔을 참고, 슬픈 척하지 않으며 타인을 속이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나도 나의 거짓말에 속아 내 슬픔을 모르게 된다. 내가 슬펐던가? 아니면 지금 행복했던가?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하는 연극에 놀아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쓸쓸히 슬퍼하는 것은 너무 외로운 삶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슬픔을 참고 혼자 이겨내는 것이 나의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감정을 토로하는 것을 아이같이 떼쓰는 것이라 생각했고, 어른스럽게 자신의 슬픔을 잘 조절하고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씩씩하게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되어야 엄마를 잃은 것처럼 누군가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여겼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은 내가 가치감을 느끼는 일이었기에 좋아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는 무서운 일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말한다. "아이들은 전부 자기 탓으로 여겨요. 실제로 엄마가 떠나간 이유는 부모님 사이의 일이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죠. 자기 때문에 엄마가 떠나갔다고. 무진 씨가 엄마에게 떼쓰고, 울어서 엄마가 떠나간 게 아니에요. 무진 씨가 어른스럽지 않아서 엄마가 떠나간 게 아니에요."


    상담 선생님은 내가 외로운 것은 나약한 감정이고 그래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며, 부모님과 같은 과오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연결고리를 형성해두었기 때문에, 외롭거나 쓸쓸한 감정을 혐오하고 그 감정에 휩쓸려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실패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부모님을 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부모님과 유사하게 지각되는 친구를 보면서 부모님을 볼 때의 스트레스가 한 번 더 재현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외로운 감정은 자연스러운 섭리예요. 그리고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것 또한 인생의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해가면 돼요. 스스로를 그렇게 통제하지 않아도, 무진 씨가 겪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무진 씨의 중심을 잡아줘서 나쁜 길로 가지 않게끔 인도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어릴 때부터 너무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부모님과 비슷한 사람이나 비슷한 패턴으로 지각되는 부분들에서 예민하게 반응해 왔을 거라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나가면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말랑해지면서 점점 대처도 유연해질 거예요.”


    선생님의 위로에 마음이 녹으면서도, 내가 실패해왔던 이전 관계들이 떠올라 선생님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매번 바람기 있는 남자들을 만나게 되었던 게 마치 저의 외로움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 그런 결과를 얻게 된 것처럼 생각하게 돼요. 삼촌이나 다른 어른들의 말처럼 부모님의 삶을 반복하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워요.”


    내가 불안에 휩싸여 길을 잃을 것만 같을 때면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아주 단호한 등불이 되어주신다.


“무진 씨와 부모님은 다른 객체예요. 분명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진 씨와 부모님이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리고 무진 씨는 상처를 이겨내는 힘이 강하고,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도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는 게 느껴져요. 무진 씨가 진짜 사랑하고 마음 맞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무진 씨가 겪었던 상처를 절대 되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저는 알겠어요.

무진 씨가 비슷한 환경의 남자들을 만났던 것은, 아마도 그 남자들도 무진 씨처럼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사람들이었을 거예요. 서로 그 의지가 비슷하니까 만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

    

    지금껏 나는 혹시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아빠 혹은 엄마의 실패한 인생을 반복하게 될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공포감에 억눌려 나는 더 열심히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나를 이성적이지 못하게 하는 감정들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이상적인 어른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체적으로 이상적인 어른 모델을 만들어내야 했었는데, 그 방식이 결국엔 부모님과 반대되는 상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두려워하며, 부모님과 반대되는 삶만을 추구하는 경직된 사람이 되어갔는데, 상담 선생님의 말은 처음으로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어른 모델에 대한 상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하였다.


"사람은 누군가가 필요해요.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어요."


    나의 나약함과 깊은 외로움을 인정하는 건 뼈 안 쪽까지 시린 일이다. 혼자서 괜찮아져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지만, 사실 나는 마음 깊숙이 함께 고통을 치유할 누군가를 원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와 어떻게 함께여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지 몰랐다. 나는 그런 걸 보고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누군가와 함께 더 좋은 삶을 꾸릴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이 충분히 있다는 걸 믿어야 했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이 구성한 현재의 나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나의 욕구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https://youtu.be/n0I7sqRi6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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