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차가운 분노의 얼굴
화에도 여러 가지 양상이 있다. 소리를 내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는 ‘뜨거운 분노’에서부터 냉정한 음색과 경직된 몸으로 최소한의 표현으로 드러내는 ‘차가운 분노’까지, 화에도 다양한 방식과 층위가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차가운 분노’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쏟아붓는 뜨거운 분노 폭탄 세례에 내 마음은 넝마가 되었기에, 나는 아빠처럼 누군가에게 화를 퍼부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분노를 폭발시켰으니, 그 반대로 차분하게 화를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면 ‘아빠와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 여겼다. 솔직하게 더 무지한 나를 고백하자면, 난 스스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 여겼다. ‘차가운 분노’ 또한 엄연한 화의 표출이고,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에 미묘한 표정과 말의 뉘앙스에서 ‘화’를 감지하고 상처를 받는 섬세한 존재라는 걸 몰랐다.
스스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 믿고 있는 무지한 가운데, 그 관점을 뒤엎는 일이 벌어졌다. 30살이 가까워질 때까지 한 번도 소개팅을 해본 적 없던 나는, 즉흥적으로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다. 두 번의 데이트를 하고, 상대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생기지 않아서 나는 이 관계를 어떻게 끝맺어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두 번째 데이트 다음 날, 갑자기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뚝 끊기더니 몇 시간을 기다려도 회신이 없었다. 나는 ‘예의 없이 관계를 마무리하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고,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며 상대방에게 화를 내려고 하자 친구들이 ‘저녁에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 기다려봐. 그리고 화는 내지 마.’하고 나를 뜯어말렸다.
내가 정한 마지노선이었던 저녁이 되어도 답이 없자 친구들도 이건 잠수라는 것에 동의했고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성적인 호감을 쌓는 시간은 아니었더라도, 인간적인 대화는 나누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사라지시니 기분이 좋지 않네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짧게 사과하고, 관계가 그렇게 마무리되었는데, 나는 그에게 거절당한 것에 자존심이 너무 상해 명상을 하거나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며 마음을 겨우 달래야 했었다.
상담가는 이 이야기를 다 경청하더니, 2가지 포인트를 짚었다. 첫 번째는 상대방이 잠수 탄 것이 내게 왜 ‘예의 없는 일’이 되는 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그 행동을 예의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에 그 질문이 너무 신선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배려받지 못해서, 무시한 것 같아서 화났다고 하면 이해가 되는데, ‘예의’라는 것은 수직적인 관계에서 지켜지지 않았을 때 화나는 것 아닌가요? 소개팅 상대는 수평적인 관계잖아요.”
“저는 배려하지 않는 게 예의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묘하게 달라요. 혹시 할아버지가 예의를 엄격하게 중요시하셨나요?”
“아니요. 할아버지는 제가 반말하고, 애칭으로 장난처럼 불러도 아무 상관하지 않는 걸요.”
그러다 어김없이 스치는 아빠의 모습. 아빠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군인이 되고 싶었다던 아빠는 내가 청소년기일 때에도 군인처럼 엄격하고 자신의 지침 사항과 규칙이 분명하고 확고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건, 자신이 건 전화에 바로 응답하지 않는 것, 자신이 보낸 문자에 즉시 답장을 하지 않는 것, 언제 집에 돌아올지 분명하게 하지 않는 것,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애매모호한 말. ‘조금 있다가 갈게’ 아빠는 이 ‘조금’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항상 정확한 시간을 말하길 요구했다. 그리고 약속했던 그 정확한 시간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일어나던 폭발적인 분노. 화가 나서 나에게 회초리를 휘두른 뒤 집에 홀로 남겨두고 가버리던 아빠. 그리고 화가 풀린 뒤 미안함이 밀려와 사과를 하던 아빠. 사실은 날 사랑한다고 하던 그 두 가지 모습의 아빠.
그 모든 아빠의 모습을 얘기하고 다시 거울을 보니, 나를 비춘 거울 속에 아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그런 아빠의 모습을 닮았던 거였다. 즉시 답장해주지 않는 것, 그러니까 더 큰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상대방의 모호한 행동을 견딜 수 없는 것.’ 그리고 내 기준에 예의(혹은 규칙)라 생각하는 걸 상대방이 지키지 않았을 때 폭발적인 분노의 소용돌이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 또한 아빠와 맞닿아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화가 났을 때 친구들이 날 뜯어말려서 상대방에게 폭발하지는 않았고, 상대적으로 돌려서 온화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떠올려보니 과거의 나는 유사한 일이 있을 때 상대방을 혼내거나 비난하고, 더 이상 아는 척도 하지 말자고 말하며 당신이 나를 얼마나 화나게 했는지 처절하게 알려주려고 했었다. 그런 뒤 나는 항상 후회했다. 감정적이었던 나를. 아빠 같았던 나를. 내가 상처받은 방식대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야 만 나를. 후회가 밀려올 때 나는 뒤늦은 사과를 했지만, 어떤 상처들은 다시는 봉합할 수 없기도 하다.
감정적인 분노 후에 뒤늦은 사과를 하는 것 또한, 아빠와 닮아있지 않은가. 나는 아빠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쥐고 울었다. ‘분노’라는 주제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첫걸음이었다. 친구들 덕분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았기에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또 울음이 터졌다.
우는 내게 상담가는 너무 잘했다고 칭찬과 격려, 위로를 해주었다.
“일어나는 감정을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행동을 바꿔가면 돼요.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건 이제 자각했으니, 모호함을 견디는 마음을 조금 더 늘려가 봅시다. 세상엔, 인간관계엔, 모호한 게 너무 많아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상담가가 짚은 두 번째 포인트였다. 나는 왜 관계에서 오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왜 모호함이 보일 때면 분노 발작을 보이는 걸까. 그것 또한 내가 탐색해야 할 나의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