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못 해”
무언가 시도해야 할 때마다 계속 내 발목을 잡던 내면의 말. 왜 못 한다고 생각하는지, 왜 자꾸만 그 생각에 사로 잡혀 무엇도 시도할 수 없고 무기력해지기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면접 일정이 생겼을 때, 심리적 기능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면접을 잘 치르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연마하고 준비해서 면접을 성공적으로 치를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두려움에 떠느라, 압박감에 주저앉으며 허비했다.
지금껏 여러번 도전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나의 감정은 동일했고, 그에 따른 행동 패턴도 항상 같았고, 당연히 결과도 실패였다. 이 문제 또한 내가 상담을 통해 풀어가야 할 과제였다. 언제까지고 두려움에 굴복하여 실패를 거듭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왜. 왜 그런 감정과 생각에 휩싸이는가.
나는 어디서부터 이 감정을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이었고 행동이었지만, 내가 그러한 상태가 되는 것은 납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열심히 준비해야지.’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
‘근데 왜 안 해?’
내가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나는 흐트러진 감정의 퍼즐들을 마구잡이로 꺼내놓았다. 상담가는 의미 있는 퍼즐들을 주워 모양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는 애타는 감정이 너무 싫어요. 그래서 그 애타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포기해버려요.”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어릴 때의 잔상.
아주 애타게 무언가를 바라던 어린 나의 모습.
나는 그 잔상이 싫어서 얼른 지우려고 침을 꼴깍 삼켰다.
침을 삼켜도 우울한 어린 내가 목구멍에 콱 걸려서 넘어가지를 않았다. 이게 입 밖으로 나오면 내가 열심히 지키고 보수했던 나의 허름한 집이 큰 홍수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무서웠다. 멋진 새 집을 지으러 상담에 왔고, 허름한 집들을 부숴야 새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제 불가능의 괴물 같은 감정을 내가 애써 만들어 놓은 안식처에 풀어놓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다시 그 감정에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다른 퍼즐들도 많았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니까 덜 무서운 곳에서.
나의 주절거리는 말들을 듣던 상담 선생님은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바랬는데 좌절된 게 뭐예요?”
나는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까 떠오른 잔상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서워서 말을 할까 말까 입술을 달싹거렸다.
목소리보다 먼저 나온 건 눈물이었다.
선생님은 둑을 막고 있던 장애물을 단 한 마디로 치워버리셨다.
“간절하게 바랬던 것은 (친) 엄마가 다시 돌아오는 거였어요. 그리고 (새) 엄마가 떠나지 않는 거였고요. 그런데 모두 다 좌절됐죠.”
“낳아준 엄마도 떠났고, 길러준 엄마도 결국 떠나갔죠. 그 좌절이 준 상처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은 거예요.”
엄마들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많이 바랬는지. 자기 전에 기도도 해보고, 언젠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힘 내보기도 하고,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도 해보고, 아빠가 해주지 못하는 걸 내가 대신해줄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하고.
그 모든 간절한 마음과 노력에도 수십 번씩 좌절되었던 경험이 내가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게, 그리고 애타게 노력해봤자 어차피 좌절될 거라고 여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가슴 아픈 경험에 어린 무진씨는 모든 걸 본인 탓으로 돌렸을 거예요. 그러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을 안될 사람, 못할 사람, 부족할 사람으로 규정했을 수도 있어요.”
엉엉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
눈물이 내 상처를 씻겨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실제로 이 상담을 하고 나서, 또 면접을 봐야 할 일이 있었다. 상담 덕분인지 면접이라는 상황이 두렵긴 했지만 회피하지는 않았고, 준비를 잘 한 덕분에 면접도 잘 봐서 합격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과거와 현재의 고리를 바꿔나가는 것이겠지?
성인이 되어 어릴 때와 다른 환경, 다른 사건에 처해도 나는 똑같은 감정 습관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었다는 걸 상담을 하면서 많이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저 어릴 때의 일이라고 치부했던 것들이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그 두려움이 내가 이 일기를 쓰게 된 이유였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나의 관성을.”
“무진씨가 이렇게 스스로를 잘 성찰하는 이유가 바로 일기 쓰기였군요. 무진씨는 참 스마트해요! 일기를 쓰며 한 번 더 정리하고, 또 평소에도 계속 그 주제로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상담에서도 잘 성찰하고 회피하지 않고 잘 알아차리는군요.
사람 마음에 관성이 있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작업을 하다 보면 무진씨의 마음과 더불어 신경과 감각이 변하면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새로운 상태로 변할 수도 있어요. 쌀을 씻고, 열을 가열해서 뜸을 들이면 밥이 되잖아요. 하지만 그 밥을 다시 쌀로 만들 수는 없어요. “
나는 내 상담 일기에 ‘멘탈피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었다. 피티를 받으면 트레이너가 균형 있는 건강한 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켜 주듯이, 상담은 나를 균형 있는 건강한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훈련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을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롭듯이,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을 알고 그 부분을 튼튼하게 하는 과정 또한 너무 힘이 들고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렬했다. 나의 상처를 후비며 괴로움을 느끼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나의 남은 삶을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들로 채워나가며 덜 불행하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9곡 잡곡밥이 되어야지. 그리고 다시는 쌀알로 돌아가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