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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MUZN Jan 09. 2022

4-2. 실패에서 성공을 꿈꾸는 것

3) 좌절된 기대는 실패한 방식으로 달성할 수 없다

U는 언제든지 내가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있었고, 나 또한 그가 손 내밀면 닿을 곳에 항상 있었다. 우리는 틈만 나면 같이 밥을 먹고, 정처 없이 거닐며 이야기하고, 가끔은 우울한 서로를 웃겨주기도 하며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채웠다.


    U와 내가 끊어진 날도 평범하게 우울한 날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밥 먹자.”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우울한 나는 “우울해서 입맛이 없어.”라고 답을 했다. 그건 사실 ‘나 우울하니까 좀 달래줘.’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신호를 읽을 수 없었거나 혹은 읽고 싶지 않았는지 내 메시지를 읽고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이 없는 채팅창을 바라보던 나는 초조해졌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당연하게 있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어 약간은 섭섭하고 약간은 화가 나서, 하지만 그걸 날 것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서 농담처럼 나의 진심을 담아 “동생이 우울해서 입맛 없다는데 신경도 안 쓰냐~”라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나한테 왜 그러냐?”


    차가운 대답. 그 말에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화에 둘러싸여 “이럴 거면 우리 연락하지 말자.”라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말을 해버렸다.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오빠에게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오빠는 그 사과를 받아주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후에 다른 이로부터 U가 나의 마지막 대사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U 외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내가 화를 내고 관계를 끊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화가 나면 – 버럭 하고/상처 주고 – 감정이 가라앉으면 사과하는] 패턴. 나는 그 기억의 조각들을 정리해서 상담가에게 가져가 반복된 나의 과거 모습과 아빠의 어떤 부분이 닮아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내가 가진 이 패턴은 아빠가 나 혹은 새엄마에게 화를 내던 패턴과 동일했다. 고등학생 때,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와 몰래 놀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저녁 먹으러 집에 언제 들어올 거냐고 계속 전화를 했는데, 나는 조금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말하며 미뤘고, 나중에는 아빠의 계속되는 전화에 성이 가셔 전화를 무시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헐레벌떡 집에 들어갔는데, 아빠는 현관문을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회초리로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날이 아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았던 날이었다.


    아빠는 나를 내버려 두고 동생과 새엄마를 데리고 외식을 하러 나갔고, 나는 엄마가 사놓은 김밥 두 줄을 들고 기숙사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에 가서 엄마가 준 김밥을 먹고 있는데, 아빠가 전화가 왔다. 때려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본인은 누가 자신을 기다리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사실은 나를 많이 사랑하고 걱정된다 같은 말이었다.


    나는 울면서 아빠의 진심을 느끼고 아빠를 용서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아빠를 처음부터 미워라도 했던가? 나는 아빠가 내게 어떤 끔찍한 일을 하더라도 상관없이 언제나 아빠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빠가 나에게 욱하고 상처 준 뒤에 사과한 것이 한 번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빠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나는 아빠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이해했고 사랑했으니까. 내가 아빠를 감싸는 모습을 보이자 첫 번째 상담가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결국 아빠 딸이네!'


    아빠가 가진 행동양식 [욱하고-남을 상처 주고-사과하는] 패턴을 내가 닮아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걸 왜 반복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내가 사과를 하게 된 근간에는 이 사람과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는데, 정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 사람과 멀어진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 변동이 전혀 없을 때도 멀어지기 싫다는 거다.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한 것을 준 것도,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의지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누군가랑 멀어지는 기분이 끔찍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는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거리감을 두더라도 아주 얇은 끈으로라도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어렸을 때 끊어진 관계가 뭐죠?”


“(당연히) 엄마예요.”


“맞아요. 엄마와 끊어진 경험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무진 씨는 누군가랑 끊어지는 느낌을 싫어하는 거예요.”


그럼 아빠를 빼닮은 행동양식은 왜 반복되었던 걸까.


“아빠의 그 행동 패턴은 새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사람은 실패한 방식을 무진 씨는 성공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예요. 새엄마와 아빠가 다시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행동을 자신의 관계에서 계속 반복하는 거죠.”


    나는 새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시 화합하기만을 소망했었기 때문에 상담가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욕구와 갈망이 아빠와 새엄마가 가졌던 삶의 패턴을 재현시키고, 그걸 내 인생에서 성공시키려고 했다니. 내 인생에서 성공하면, 아빠와 새엄마에게 기대했던, 하지만 좌절되었던 나의 갈망이 해소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걸까.


    나의 미해결된 욕구들과 이 욕구들이 좌절되었을 때 느꼈던 끔찍한 슬픔들. 그 슬픔들이 나의 미해결된 욕구를 발현시키는 강력한 연료가 되어 자꾸만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반복하였다. 나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게 된 상담 끝에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내가 이 슬픔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고 관성처럼 계속 실패를 반복하게 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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