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했는데도 불안은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던 건 아니다.
마음을 꺼냈으니 이제는 편해질 거라고, 불안이 조금은 줄어들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말을 한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상대의 반응을 곱씹었고,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 괜히 의미를 붙였다.
‘그 말이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 ‘괜히 괜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차라리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불안은 형태만 바꾼 채 다시 찾아왔다.
전에는 말하지 못해서 불안했고, 이번에는
말해버려서 불안했다.
그 차이가 처음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분명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예전의 불안은 나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말을 삼키게 했고, 마음을 접게 했고, 관계에서 한 발 물러나게 만들었다.
반면 말을 한 뒤의 불안은 나를 완전히 숨게 만들지는 않았다.
여전히 떨렸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괜찮은 척하는 사람’으로만 관계 속에 서 있지는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마음을 완벽한 사람처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조금은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날도 있다.
말을 꺼냈던 용기를 괜히 후회하는 밤도 있고,
괜한 파문을 만든 건 아닐지 혼자서 여러 번 되묻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무난하게 관계를 유지하던 시절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로는 완전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
불안은 남아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불안이
내 마음을 전부 대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불안을 데리고 관계를 한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불안을 이유로
나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불안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나서 흔들려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불안이 줄어드는 순간은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조금씩 태도가 바뀌는 과정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했는데도 불안한 날들. 그래도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지는 않는 선택.
지금의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완전히 편해지지도 않았고, 완전히 두려워하지도 않는 상태.
불안을 없애지 못해도 불안한 채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