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식 소동
얼마 전 내가 올린 몇 개의 단편소설들을 작품집으로 묶었다. 명절연휴 전 친구에게 안부를 묻다가 말했다.
"새로운 단편에 착수했어"
이미 책이 열 권 가까이(넘게인가?) 나오고 큰 상을 받기도 한 작가 친구가 답을 보냈다.
"대단하네! 너 감각 있어."라는 말에 이어 이전 저가 했던 말을 덧붙였다.
"내가 그랬쟎아 그만 읽고 쓰라고."
예전의 나라면 '그런가 ㅎ?'라고 답했을 것이다. 속으론 칭찬이라 흥도 났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마음엔 어떤 파동도 일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연극'과 '플래시 백'이라는 두 개의 단어에 꽂혀 서희라는 60대 여자의 연극수업을 배경으로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지만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제일 좋아하는 새벽 선선한 공기에도 쓰고 싶은 마음이 별로 일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놓을 뿐 오래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쓰기 싫었다. 절망과 권태는 결국 하나의 감정이라는 말에도 꽂혔다. 그들을 다 붙잡고 있으니 서희가 길을 잃고 글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오늘에야 대략의 방향을 잡았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만사가 시큰둥하다. 소설보다 이 감정에 대한 생각이 더 많다. 이 심드렁한 감정이 무엇인 걸까? 골똘히 생각해 보지만 알 수가 없다. 이게 다 무어라고! 하는 기분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입에 미소를 띤 채 혼자서 즐겁게 거리를 걷고 멀리 산책을 하거나 시내를 돌아다니던 일도 다 그만두었다. 여행을 간다고 상상해 보고 여행지를 상상해 봐도 여간해선 흥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떠는 일도 별로 마음에 당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다 귀찮다. 영화를 보는 일도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 예술영화 뭐 다음에. 친구의 권유에도 별로 나서지 않는다.
여러 차례 브런치의 격려글이 전해졌다. 근육에 비유한 꾸준한 글쓰기 당부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만사가 심드렁하다.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도, 몸이 안 좋아서도 아니다. 감정은 명확한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혹시 여름내 붙잡았던 몇 편의 단편소설에 진이 빠졌나? 확실한 건 여름을 막 지나서부 터니까 말이다. 선선해진 새벽, 창을 열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왔던 2년 동안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 거기서 거기인 듯 시큰둥해져 버렸다.
이런들 뭐! 저런들 뭐! 이래 봤자, 뭐!
마음이 어째 저째하는 남들의 글들도 다 지루해졌다. 안 읽힌다. 고백하자니 그렇다.
"엄마 같이 가실래요?"
"싫어, 다 귀챦아. 그냥 사는 게 다 귀챦아."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나들이 삼아 가셔요. 엄마 좋아하는 조카도 보시고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안 다닐까 싶어." 좋아하는 조카의 잔치에 빠지시겠다는 어머니의 생각에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예전보다 어디가 더 편찮으신 것도 아니고, 어떤 일로 걱정거리가 생기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이런 대꾸를 떠올려야 옳겠지만 오히려 내 맘속엔 '그렇죠. 뭐, 그러실만해요. 귀찮으실 것 같아요. 제가 벌써 그런 맘이니 어머니 연세엔 그런 마음이 당연할 것 같아요.'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이 듦이란 사는 일에 흥도 적어져 목숨에 집착도 적어져야 작별이 쉬워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그냥 언젠가 해야 할 작별을 위해서는 이 정도 속도로 다가오는 '심드렁함'은 받아들여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는 일이 귀챦다고해서 뭐! 그러실 수도 있다. 염려를 크게 하지 않는다.
명절이라 며칠 분주했지만 그도 그냥 그랬다. 그저 그랬다. 두 딸과 두 사위의 방문에도, 상다리가 휘어질 상차림에도 예전과 다르게 역시 시큰둥하다. 연일 비까지 와서 그런가? 다 시큰둥하다.
이렇게 작정하고 고백하면 다시 흥이 생기고 몰입할 수도 있을까?
다행히 글 속 인물 서희도 구체화했고 대략의 단락 얼개도 추려놓았으니 내일 새벽은 다르려나!
시원해진 새벽공기에 커피맛도 더 깊고 좋으려나!
창문을 열고 깊게 호흡하면 의욕이 더 차오를 수 있으려나! 주어진 하루에 감사할 수 있으려나!
글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과 사연은 살릴 수는 있으려나!
'수인'이라는 예쁜 사연의 이름을 꼭 쓰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있으려나!
오늘 또다시 '독자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니 글을 쉬지 마시라'는 메시지가 왔다. 바로 떠오른 말은 나, 여기 있어요!이다.
저 여기 아직 글을 쓰고는 있습니다. 단편소설을 구상 중입니다.
'나, 여기 있어요'라고 떠올리니 아주 오래전 내 인생의 작은 소동이 떠올랐다.
수십여 년 전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날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친척들에게 본명과는 다른 예명으로 불렸다. 아주 갓난아기일 때 혀가 길어 울음소리가 특이했단다. 시주받으러 다니시던 스님께서 내 울음소리를 듣고 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예명으로 불러줘야 나쁜 걸 막는다며 지어주셨다고 한다.(이쯤 되니 뭐 꾸며낸 옛날 옛적 이야기 같다.) 친가와 외가로 집집마다 대여섯 명의 사촌들이 있으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를 예명으로 불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이 가장 염려한 것은 내 이름을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본명을 여러 차례 일러주신 부모님은 입학 첫날 이름이 불리면 '나 여기 있어요.'를 손을 들어 표하라고 여러 차례 연습을 시켰다.
당일 아침에 부모님께서 직장때문에 사촌 언니의 손에 나를 맡기셨다. 어머니가 수건을 접어 왼쪽 가슴에 달아주며 재차 당부를 하셨다. 새 가방을 메고 운동장에 줄을 섰을 때 남자 이름같은 그! 이름이 들렸다.
"나 여기 있어요."
다른 모든 애들이 '네'라는 짧은 대답을 했는데! 나만 그렇게 힘차게 소리를 지르고야 만 것이다. 입학생들과 우리를 둘러싼 학부모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부끄러워 줄을 이탈해서 뛰어 나갔다. (대체 그런 용기는 또 어디서 생겼던 건지) 학교 건물 뒤 푸세식 화장실에 숨어 들어갔었다.
언니가 화장실 앞에 와서 어르고 달래서 문을 열고 나왔었다. 숨이 막혔지만 부끄러워 그들 속으로 되돌아가기를 끝내 못하다가 교실로 갔었던 그날의 소동은 이후 집안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다른 장면은 기억에 없어도 손을 높이 들고 '나 여기 있어요.'외쳤던 기억과 사람들의 반응은 생생하다.
"손을 들고, 나 여기 있어요, 해야 하는 거야"라는 엄마의 말대로 했을 뿐인데!
서울광희초등학교의 그 옛날 추억만 해도 글감은 무궁무진일 것이다.
브런치의 운영방침 메시지대로 나 여기 있습니다.로 소식을 알려본다.
'저 여기 있답니다.'
내일 새벽에도 커피를 내리고 기운을 내보자. 그리고 나같이 말수 적은 서희를 불러내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자, 혼자 마음먹는다. 다들 안녕히 주무시기를!
나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