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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Jul 04. 2023

애인 만드는 남자

뭘 먹는다?

평소 그는 말이 없고 과묵해 보이며 때로 타인의 말에 수줍음을 보이기도 한다. 큰 키에 핏기 없고 마른 체형, 위로 뻗친 머리가 눈길을 끈다. 일찍부터 쇠어버린 흰머리 탓에 40을 갓 넘긴 남자로 보기엔 나이가 좀 들어 보인다.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우수에 찬 눈빛과 수줍어 보이는 태도 탓에 주변의 여러 여자들은 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앉으라 빼준 의자

먼저 놓아준 물컵이나 수저세트

복도 맞은편 가벼운 목례와

한 건지 아닌지 모를 작은 미소

책상사이 지나가도록 비켜주는

슬로모션의 뒷걸음질

무심히 붙잡고 기다려주는 건물의 손잡이

말하는 이의 의견에 동조하는 고개의 끄덕임


그녀들이 그와 마주한 장소와 물건들이 상기시키는 기억들은 제각각 은밀하게 자라고 커져나갔다. 여러 달이 지나가며 에피소드는 상상 속에서 사연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지기 일쑤였다.

그녀들은 이 모든 것에 각기 제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그럴듯한 사연의 조각을 맞추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러나 누구도 입 밖으론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결혼한 유부남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이 적은 것은 온전히 아내와의 불화 탓이었지만 아무도 그의 가정사를 알지 못했다.

집을 나와 여관에 장기투숙한 지 두어 달, 그의 머리카락은 더욱 수북하게 자라고 삐쳤으며 희어졌다. 퇴근을 할 즈음 책상을 정리하며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곁눈질하는 주변의 여자들에게 그는 유부남도 무엇도 아닌 세상을 달관한 도 닦는 사내로만 보였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언제나 느리고 천천히 목례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들과 마주한 복도, 문을 잡고 기다려주던 현관을 지나며 그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건 단하나였다.


'뭘 먹는다?' 주말 단골이 된 식당으로 향하며 주인과 한잔 할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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