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카롱 Jul 25. 2023

마지막 의성어

아니야, 그래서

문상을 하고 눈가를 훔치며 상주와 맞절을 한다. 접객실로 건너오며 아는 이가 없으니 누구와 겸상을 해야 하는지 혼자 온 그 둘은 멋쩍다. 눈이 마주치자 마치 일행인양 "저쪽으로 가실까요?" 남자가 먼저 권한다. 대답 없이 종종걸음으로 남자가 권하는 쪽으로 가 마주 앉는다. 그 둘이 자리를 찾아 앉는 사이 넓은 양은 쟁반을 든 여자는 이미 준비된 음식들을 올리고 밥과 국을 떠 담는다. 다른 조문객과 이야기를 하던 나이 든 상주가 자신의 아내가 거드는 상차림에 눈길을 주더니 "아이고, 사돈 청년이 오셨네." 하며 건너온다. 청년이라는 말에 나무젓가락을 가르던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슬쩍 치어다본다. 나잇대가 가늠되지 않으나 사돈집 자식이라면 청년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잘 안 됐네요."반쪽으로 갈라지지 않은 젓가락을 보며 말을 건네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사이 나이가 지긋한 상주가 사돈 청년의 옆자리에 와 앉는다.

" 어제 전화하신 양반이지?" 청년은 친근한 양반이 되었다.

"네, 맞습니다. 장소도 여쭤봐야 할 것 같고 해서."

"아, 그때 내가 엄청 정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좀 화가 나서 전화를 그렇게 받았으니 이해해요."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는데 오해 말라는 변명이 이어진다.

" 네네. 그러신 것 같았어요. 비행 중인 누나는 연락이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연락을 드린 거였죠. 뭐. 이해합니다"

"경황이 없는 거라, 마 내가." 수차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시의 상황을 과장한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 상주남자의 눈은 술기운으로 반은 감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시 전화하면 정황도 얘기해 주고 다시 잘 말해줄라 했는데 연락이 안오대?"

"아아! 네, 다른 경로로 다 전해 들어서요."

"아, 그래요.. 자, 어서 드셔요." "어서 드셔. 소고기 뭇국이 맛있어요. 육개장도 있는데, 것도 괜찮고!"

플라스틱 숟가락을 찾아 건네며 어서 먹으라 두어 번 반복한다.

시간은 이미 10시가 되어간다.

"술은?" 이미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있다. 여자가 작은 소주용 종이컵을 찾아 자리에 늘어놓자,

"아, 이건마 우리 취향이 아닙니다." 하며 일반종이컵을 들어 소주를 하나 가득 따른다.

"뭘로?" 짧은 말로 여자에게 눈을 맞추며 종이컵을 내민다.

"네, 저는 맥주 마시겠습니다."여자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맥주 좀 가져 라"를 주방 쪽으로 내지르자 남자의 술에 불만이 많아 보이는 상주의 아내가 인상을 쓴다. 그녀가 맥주캔 두 개를 들고 다른 상복을 입은 젊어 보이는 남자를 찾아 내민다.

맥주캔을 든 조금 젊은 남자가 건너와 여자옆에 앉는다.

"사돈총각 정수? 맞지?"

" 형님, 야가 정수네요."

이름까지 기억하는 남자가 신기한 듯 감기는 눈에 힘을 주며 쳐다본다.

"어엉, 정수? 아아, 맞네 정수"

"아, 네네. 잘 계셨어요?"

젊은 상주가 이십여 년 전 이야기를 하며 기억의 접점을 찾고 그때마다 종이컵을 올려든다.


사돈총각과 여자는 난처하다.

상주 둘은 이미 술이 과했고 그 둘은 배가 다른 형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늘의 자리가 아니면 서로 보지 않은지 10년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다.

"그게 그런 겁니다. 형님." 국그릇에 코를 박고 음식 한두 점을 입에 넣다 고개를 들면 상주 둘은 뭔가 시비를 가리는 일에 각자 조금씩 언성이 높아진다.

"아니야. 그래서 내가 어머니는 거길 가기가 싫다고 하신걸 기억하거든."

"아니죠. 그때 어머니께서 그건 아니라고 형편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거든요."

"아니야. 그래서..."이어질 말이 멈춰지자, 남녀는 젓가락질을 따라 멈추고 나이든 상주가 무슨 말을 이어갈지 주목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경주 갔을 때, 너는 없었잖아."

바로 이어가지 않는 젊은 상주는 컵을 비우고 다시 채운다.

아주 잠깐, 정적이 흐른다.


" 영일이 아빠, 손님 오셨습니다." 

"아니야. 그래서, 잠깐 인사 좀 드리고 올게."

나이 든 상주가 주춤거리며 일어나 조문객을 쳐다보며 "오셨습니까?"큰 소리로 인사를 하더니 뒤를 돌아, 앉아 있는 세 사람에게 한마디 한다.

"아니야. 그래서...... 내 다녀올 테니 나중에 얘기하자이"

10시를 넘겨 주린 배를 채우던 남녀는 단 하나의 진실을 가늠한다.


서로의 이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단 하나의 사실!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자 빠르게 내지르는 아니야! 란 접속어는 그날로 마지막이 될 것이다.

장례를 다 치르고 나면 그 둘은 다시 침묵할 것이다.

술의 힘을 빌려 내지른 의성어에 다름 아니다.

이전 14화 결심한 영애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