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드라마

살아만 돌아온다면!

by 바카롱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두 달이 지났을 즈음, 울음을 터트리며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살아만 돌아온다면, 한 달은 업고 다닐 거다."


평생 아버지는 근면한 생활로 가족을 부양했고 자식이나 주변인들에겐 살가운, 사람 좋아하는 분이었으나 어머니에게 남편으로서는 별로인 분이셨다. 늘그막에 어머니의 지혜와 살림솜씨, 특히 음식솜씨와 입이 무거운 면에서는 엄지를 치켜드셨으나 젊고 좋은 시절엔 그것을 인지하지도 시인하지도 못한 채 세상 끝에 다다르셨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전 10여 년을 치매로 어머니의 수발을 받으셔야만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삼시 세 끼에 언제나 새로 무친 나물이나 김, 드시기 좋게 잘게 자른 고기며 뜨끈하게 끓여낸 국으로 한 상을 차려내셨다. 아버지는 그 점에는 일치감치 엄지손가락을 세워 자랑을 하시곤 했지만 그건 이미 70을 넘긴 때였다.


그런 아버지, 평생 열흘 차이나는 생일을 자신의 생일에 맞춰 친지들을 부르고 띵까띵까 올겐연주를 하며 밤새 음주를 즐기셨지만 어머니의 생일을 한 번도 신경 써본 적 없었다. 음식 장만에 정신이 없는 아내를 힐끔 보고는 모여든 친지들에게

" 우린 생일도 같이 하는 거지. 뭐! 열흘 상관인데!" 하시며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에 미소가 충만했고 모여든 손님들은 그렇죠!라고 응수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생일이 아니어도 술상은 수시로 차려지고 친구들을 몰고와 밤을 나기가 일쑤였으니!

술에 너무나도 관대한 시절이었다.


치매가 심해진 돌아가시기 전 이삼년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하실 줄은!

어머니를 안고 눈시울을 붉히는 동안 그런 말이 떠올랐다.


진정, 행복이란 사랑이 담긴 수고! 인 걸까?


그리움도 시간이 해결해 준 덕에 어머니의 얼굴은 예전 이상으로 좋아지셨다. 인상도 더 편안해 보이시고 화장도 가끔 하시며 운동도 제법 꾸준하시다.

아직도 같은 심정이실까? 여쭙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미용실에서 들은 어머니 또래의 어느 할머니 이야기다.

얼마전 할아버지께서 큰병이 걸리시자 할머니를 불러 자신이 그동안 쌓아둔 모든 돈을 공개하며 통장과 증서들을 내놓으셨다고 한다. 평소 생활비를 일일이 타서 써야했던 할머니는 미용실에 오셔서도 제일 싼 거 해주세요를 입에 달고 사셨었다. 나가는 돈 모든 항목에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따라오니 매사에 움츠려 든 채 수 십년을 살아오신 할머니가 받아든 통장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있었다고 한다.


돋보기를 쓰고도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쓰셨다고 한다.


기쁘지 않았다고 한다. 기쁨보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고 한다. 누워 있는 늙은 남자와 거울에 비친 80중반의 본인 얼굴을 번갈아보며 자꾸 눈물이 맺힌다고 했다.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쉬어졌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다 늙어 그 돈을 어디에 쓰냐고. 사고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이 한 달을 누워 보내다가 하나 밖에 없는 딸과 사위를 불렀다고 한다. 이 억만 자신의 이름으로 예치해주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 일렀다고 한다.


콩나물 값까지 물어가며 추궁한 남자의 병수발을 들며 이제는 본인의 우울감을 견디지 못해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던 어머니께서 갖고 계신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할머니께 용서의 감정이 오기는 할까?

할아버지께서 명을 달리하시면 할머니께서도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실까?


빚만 떠안긴 남편보다야 낫겠다! 싶은 순간이 예고없이 찾아올수도 있을까?


" 오늘은 여기서 제일 좋은 약으로 좀 해줘"

할머니께서 거울앞에 앉으시며 하신 말씀이다.


이미 예고없이 그 순간이 오신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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