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눈길이 분주하다.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대기실 앞으로 가 전광판을 올려다본다.
플랫폼, 전광판에 플랫폼을 찾는 순간 이미 여행길에 올라선 것처럼 느낀다. 출발시간과 목적지 그리고 기차번호는 보이나 플랫폼은 아직 뜨지 않는 걸 확인한 후 앉을 만한 자리를 살펴본다. 배가 불룩한 남미계 남자옆으로 한 자리가 비어 보인다. 그 남자의 큰 백팩이 두 자리를 걸친 채 놓여있어 일행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가가 짧은 영어로 앉아도 되는지 묻자 남자가 자신의 백팩을 자신의 발 앞으로 옮겨놓으며 오케이를 대신한다.
대각선 의자에는 철 지난 양복상의가 어깨로 흘러내릴 것 같이 마르고 늙은 남자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아이스크림콘의 작은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어디선가 비둘기 3마리가 날아온다. 제 머리를 부딪히며 과자를 사수하는 모습을 본 노인이 과자를 손으로 으깨 후둑 후둑 바닥에 던져준다.
몇 마리의 비둘기가 더 날아오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은 피하기도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전화하는 옆의 남자에게서 계속해서 스페인어가 들려온다. 복도 쪽에는 5명의 다른 남미계 가족들이 비행기로 이 도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목베개를 걸친 채 캐리어를 방패 삼아 바닥에 드러눕는다. 그들 중 가장 젊은 남자가 다른 도시로의 이동을 설명하는지 전광판을 가리키며 여러 마디 하더니 티켓 창구로 달려간다.
10여분을 남긴 시간 실눈을 뜨고 전광판을 읽는다.
플랫폼에 숫자가 보인다. 속으로 되뇌며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걸친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양한 언어가 크기를 다르게 들리기도 멈추기도 한다. 열차칸 번호를 다시 한번 찾아보며 기차에 오른다. 짐을 올리고 의자에 깊숙이 앉는다. 적막 속에서 철커덕 열차문 닫히는 소리만이 들린다.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이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기차는 아주잠깐 미끄러지는 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른 철로에 멈춰있는 기차를 뒤로하고 기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기차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마이크의 잡음과 함께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정기점검의 이유로 모니터에 안내영상이 보이지 않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계속된 많은 양의 비로 일부 구간에서는 서행이 부득이하여 다소 지체가 불가피하다는 말도 덧붙여진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기차 내 에티켓도 당부한다. 생각보다 길고 장황한 설명이 드디어 끝이 나고 기차는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정차역에 다다를 때 지지직 마이크 소음과 함께 젊은 여자의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정차역의 이름과 함께 지체된 시간을 정확하게 분으로 말해주며 죄송합니다를 말한다.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시간의 지연에 대해 그녀는 매 정차역마다 사과의 말을 전한다. 여자는 아주 잠깐 마이크를 쥐고 있을 관계자 외 출입금지 너머의 여자를 상상한다. 밖의 풍경은 빠르게 바뀌지만 여자는 좌석에 깊숙이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눈조차 덜 깜빡인다. 계속해서 자신을 부른 제부의 죽음을 붙들고 있다.
예상치 못한 제부의 죽음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여자는 계속 소설을 떠올린다. 울음에 통화가 불가능했던 여동생의 목소리가 영화속 여배우의 모습에 얹혀져 머릿속에서 뒤엉킨다.
기차는 모든 이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2B에 앉은 긴 머리 젊은 남자나 3B에 앉아 계속해서 가방을 뒤적이는 60대 여자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차는 그들의 소설을 허용한다. 정적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