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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Oct 29. 2023

외출

빈집

당신들은 분주하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아차차!를 외치며 나를 넘어 징검다리를 건너듯 폴짝 튀어 오르기도 하고 내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해 슬쩍 닫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무라는 말도 한다.


당신들은 분주하다.


이건 어때?

서로가 묻고 대답해 주는 모습은 꽤 오랜만이다. 대부분 여자는 자신의 선택을 과신하는 듯하다. 더러 남자의 의견을 묻기도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설명을 장황히 늘어놓는다. 무마된 의견에 기분이 나빠질 남자도 아니다. 사실 그는 여자의 옷차림, 가방 어느 하나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


여자에겐 남자의 무취향에 대한 불신이 깊다.


 그들이 서로의 옷차림에 대해 점검하고 의견을 나누는 일은  흔치 않다.

더구나 한번 입은 옷 다시 바꿔 입는 법이 없는 남자에게 오늘의 행동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는  두 개의 셔츠를 입었다 벗었으며 네 개의 넥타이를  번갈아 목밑에 대보며 여자의 거울 앞으로 가 의견을 물었다.


별한 날임이 림없다.


여느 때라면 이미 남자는 집을 나선 시간이다.

햇빛이 들이치는 시간, 여자는 소파에 앉거나 거실 창 밖을 보며 행복한 콧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내게도 따뜻한 당부의 말을 건네며 자신의 행복감을 전하기도 한다.


오늘은 분명 중대한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그들의 들뜬 목소리, 오랜동안의 화장과 향수말고도 남자의 태도가 확신을 불러온다.

전신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려던 남자의 발에 내가 조금 닿았을 때 덩치 큰 남자는 기겁을 하며 짜증을 낸다.


"이따가 나갈 때나 시키지 뭐 하러 우리 있을 때 일을 시키냐? 이 놈 때문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여자가 덩치 큰 남자의 투덜거림에 작은 미소를 띠며

"그렇긴 한데." 달리 말을 이어가지 않는다.

평소보다 나긋한 목소리인 걸 보니 여자는 모처럼 맘먹고 산 검은색 원피스에 매우 흡족한 눈치다.


턱을 지든 두 사람은 거울 앞에서 씩 하고 웃어본다. 오늘의 옷차림에 만족한 그들이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움직인다.


"잘하고! 엉뚱한 짓 말고!"


그들이 중문을 나서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힘주며 당부한다.


"지난번처럼 찾지도 못하게 어디 처박혀 있지 말고!"

바깥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햇빛이 가득한 거실에 고요가 찾아온다.


혼자다.

늘 하던대로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선스런 그들이 남긴 옷가지만 아니라면 일은 금방 끝내고 늘 쉬던 제자리에서 하루종일 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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