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계절 속에서

by 시절화

가을은 참 교묘하다.

겉으론 눈부시게 아름답고, 공기는 선선해서 사람을 괜히 멍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속 어딘가가 텅 빈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허무의 계절 속에 있다.


마치 이 허망함을 자연도 아는 걸까.

올해는 익은 벼들도 비에 눌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단풍은 고사하고 마른 가지들만 부쩍 늘어갔다.

계절은 점점 짧아지고, 그런 변화 속에서 문득, 우리 인생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왜 사람들은 가을을 타는 걸까. 인간은 외로움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성장은 끝이 있는 걸까,

아니면 무한한 걸까. 모두가 성장하는 건 맞는 걸까.
요즘 내 머릿속은 이런 질문들로 가득하다.

꼬리를 무는 생각에 지쳐버릴 즈음, 나는 문득 회로를 '툭' 꺼버린다.


뭐 어쩌라고. 그냥 좀 지내면 어때. 좀 쉬어도 되잖아. 그렇게 다시, 나를 조용히 다독인다.


아직도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이 하나 있다.

인간은 가장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따뜻한 사랑을 품은 존재라는 말.
그 모순된 본성에 대한 문장을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요즘 따라 자꾸 그 문장이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누군가는 다급하게, 전혀 알지도 못하는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며칠씩 밤을 새운다. 정신이 어지럽다.

그렇게 뉴스를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게 내가 밥 벌어먹고 사는 데 중요한가?"
모르겠다. 중요한 것 같은데, 너무 무겁다. 안 중요한 것 같다가도, 또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머릿속의 회로를 꺼버린다.

뇌를 조용히 정지시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사람들은 여전히 잔인하거나, 따뜻하거나, 혹은 둘 다다.

나도 그 한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있다.


분명 잘 지내고 있는데 이상하다. 오늘의 글도 미루고 미루다 겨우 써내려갔다. 어렵다. 생각보다 많이.


이 마른풀이 다시 생기가 돋아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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