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순서
시간을 지우고 싶었다.
지워내고 싶은 마음이 지우고 싶은 기억보다
앞질러 가던 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가장 가까운 어제부터 차근차근 지워야 할까,
아니면 이미 희미해진
먼 과거의 끝자락부터 지워야 할까.
어떤 시작점이 나를 덜 괴롭게 할까.
뭉텅이로 한꺼번에 도려내어 한순간에
홀가분해져야 할까,
아니면 하나하나 공들여 날려 보내며
이별의 예의를 갖춰야 할까.
도대체 지우면서도 이게 맞는지 알 수가 없다.
지워내면 비어버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혹은 지워낸 조각들이 먼지가 되어
다시 내 숨으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지우고 싶다는 간절함과
지워질까 봐 겁이 나는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우선은, 지우개를 든 채
멈춰버린 시간 위에 멍하니 서 있다.
지울 수 있을 지 아닐 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