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쌓인 계절들

by 시절화

집에서 나와 산 지 어느덧 10년.
부산 수영동에서 산 지도 벌써 6~7년쯤 되었다.
늘상 다니는 길들은 변함이 없었다.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쨍한 햇빛 아래 분홍빛 배롱나무가,

가을엔 은행잎이, 겨울엔 매서운 바람이 이 길을 채웠다.

계절은 변주를 반복했지만, 풍경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다.

길은 늘 같았지만, 그 길을 지나는 나는 달라져 있었다.


때론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길,
때론 책과 노트북을 안고 바삐 걷던 길,
그리고 꽃을 어깨에 한가득 지고 돌아오던 길도 있었다.


봄에는 꽃을 즐기며 걸었고,
여름에는 앞머리가 이마에 들러붙을 만큼 땀을 흘렸으며,
겨울에는 어깨를 웅크린 채 찬 바람을 버텨야 했다.


문득 같은 길을 걷다 생각했다.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변했다는 걸.
이 길 위의 계절과 순간들은 내 안의 변화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었다.


함께 웃으며 지나던 날도,
혼자 울며 걸어가던 밤도,
그 모든 흔적이 길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너무나도 애틋하다. 마치 나의 시간이 담긴 길 같다.


그래서일까,
이 길을 걸으면 내 안의 계절이 다시 피어난다.

한때는 봄만을 기다렸다.
이 추운 겨울이 끝나면 꽃과 함께 따뜻해질 봄이 올 거라 믿었다.
그럼 나의 계절도 꽃처럼 필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무작정 봄을 기다리진 않는다.
사계절을 온전히 살아내야 봄도 반가울 것이다.
어차피 봄이 온다고, 봄에만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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