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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봉 May 23. 2022

개인주의 시대에 동네에서 마음을 얻는 법

이슬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동네는 길과 길이 연결된 하나의 공간이다.

과연, 동네에서 이웃들끼리 미디어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 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주민이 직접 동네의 소식을 전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는 동네 방송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미디어에 소요되는 기술과 장비들을 배우고 익혀서 미디어의 수신자에서 송신자가 되기로 했다. 그러나 각자의 생업이 있고, 이 동네 방송 활동으로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이 생겼다.


“마을을 위해 그 정도 일도 못하냐?”


누군가는 쉽게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진짜 동네 속에 들어와 자원 활동으로 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한두 번 일회성 행사라면 나 역시도, 또 옆에 누군가도 열심히 있는 힘껏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주 계속해야 되는 일이라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자기 계발을 위한 운동이나 외국어를 꾸준히 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수의 불특정 한 주민을 위해 자원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네 방송은 인물, 단체 등이 생산하는 모든 것을 기록을 가능하게 한다. 고민과 과정, 결과를 보여 주는 전부가 기록이 될 수 있으며, 구성원 모두가 기록 생산의 주체가 된다. 동네의 자원은 단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 경제적 관계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마음에 깊이 각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관심을 가지려 해도 아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만 볼 수 있으며 질문도 그 범위 내에서 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의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 정보의 주체가 되는 동네 방송은 동네 내 소통의 매개체로서 그 동네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고 축적하여 보존까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KTX를 타고 갈 때와 무궁화호를 타고 갈 때 창 바깥에 보이는 풍경은 다르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마이크를 주어 세상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는 속도 맞춤형 방송이다. 주민들이 직접 동네를 생각하게 하는 통로로 보다 민주적인 동네의 소통구조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덩치가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을 할 수 있는 동네 주민이 몇 명이나 될까?

프리미어나 베가스 같은 고급 편집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부담이 되지 않을까?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편집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한다 하더라도 교육 후 몇 명의 주민들이 집에서 편집을 할까?


여러 고민 끝에 나는 주민들을 위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한 뒤 바로 손쉽게 편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료 편집 프로그램 앱을 다운로드하여 그것을 가르치기로 했다. 모집 예상 인원을 20명으로 정했는데 27명이나 신청을 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이런 교육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교육에 오신 50대 아주머니는 교육을 마친 후에 나에게 살짝 이야기해 주셨다.


“집에서 아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시큰둥했는데 여기 와서 배울 수 있어 너무 좋아요.”


동네 안에서 다양한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하여 주민들이 다양한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분명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동네의 자원을 발굴하는 과정이 점차 빨라지고, 지역주민들을 찾게 되고, 이 동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 동네라는 같은 공간에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낮은 마이크의 역할을 하고, 동네의 구석구석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소통을 위한 열린 창구가 되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낸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전환해 주고, 주민 스스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열정왕비인 내가 동네에서 하는 모든 방송은 ‘문화’다. 입을 꽉 다문 조개의 입을 벌리려고 하면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 대야 한다. 그러나 일정한 농도의 소금물에, 일정한 시간을 두면 자연스레 조개가 입을 벌려 뻘이나 미세 플라스틱도 내뱉는다. 나는 세련된 방송보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방송을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참여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방송이 누군가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표현을 하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두고,‘너의 문제이니 너 스스로 풀어’라고 하는 방관자의 태도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마을을 서로가 지키고 가꾸어 가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민들에게 귀를 열어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슬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진행되는 축적의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길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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