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이 짙은 예루살렘이 지겹다면.. 여기를 가야 한다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2천 년 전의 그 거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벽돌로 된 길바닥은 닳디 닳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좁은 돌길과 소리치는 아랍인, 어두컴컴한 골목과 빽빽하고 낮은 건물들이 올드시티를 구성한다. 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팔라펠, 허머스 등 예상 가능한 중동 음식뿐이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추천 레스토랑에 한국 음식점이 뜰 정도로 먹을 곳이 시원찮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라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상징성 때문에 이 도시에 매료되겠지만, 딱히 종교가 없거나 기독교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그저 낡고 지루한 동네일지도 모른다.
Photo by Dan Freeman on Unsplash
올드시티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그것이 예루살렘의 전부는 아니다. 올드시티를 수호하는 12개의 문 밖에는, 아주 익숙하고도 세련된 또 다른 예루살렘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신시가지는 올드시티의 서쪽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윗의 탑(David's Tower)과 다윗 망대(The Citadel)가 있는 욥바 게이트, 또는 기독교 지구와 연결된 뉴게이트를 통해 나가면 신시가지 번화가가 펼쳐진다.
예루살렘은 7개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결과로 동쪽은 팔레스타인, 서쪽은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이 점령하는 땅이 됐다. 이스라엘은 1950년 서예루살렘을 국가 수도로 정했고 본격적으로 도시 개발에 들어간다.
서예루살렘은 현대적인 상업지구로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올드시티가 인사동 내지 전주 한옥마을이라면 신시가지는 서울이다. 여기에는 시온 광장, 식물원인 예루살렘 보태니컬 가든,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 바솀, 그레이트 시나고그 등이 있다.
먹을 곳도 풍성하다. 중동 음식 일색이었던 올드시티와 달리 신시가지에는 미국식 햄버거 가게, 이탈리안,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카페 등이 즐비해있다.
밤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시티 센터나 탈피오트 지역 근처로 나가면 된다. 이 곳에는 위스키 바, 클럽들도 있고 미리 이메일이나 전화를 해놓면 테이블을 예약할 수도 있다.
고급 호텔은 물론 세련되고 편리한 쇼핑몰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마밀라 몰(Mamilla Mall)이다.
중앙에 보행로를 두고 양옆으로 쇼윈도가 저마다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오이스터바에서부터 이탈리안 음식점까지. 테라스를 갖춘 음식점도 꽤 많아서 호젓하게 샴페인 한잔을 마시는 즐거움도 있다.
영국의 향수 브랜드 조말론이나 스웨덴의 SPA인 H&M 등 글로벌 브랜드 매장도 입점했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이스라엘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파는 매장들이다. 성경의 나라답게 종교적 모티브로 만든 디자인들도 많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촛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나 예수님을 상징하는 물고기가 아방가르드한 디자인 소품이 되기도 한다. 또 마밀라 몰에는 '사해 화장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아하바(AHAVA)도 입점해있어 기념품을 사기에 적당하다.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현대 이스라엘을 만든 모셰 샤프디(Moshe Safdie)
예루살렘 신시가지 발달에는 모셰 샤프디라는 한 건축가의 공이 컸다. 이스라엘계 캐나다인인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건축가로 더 유명하다.
이스라엘이 아직 영국령 팔레스타인이었을 당시, 그는 하이파 지역에서 태어났다. 10대까지 이 지역에서 살며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19살이 되던 해에 그는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민을 가게 됐고 맥길(McGill)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한다.
북미 지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던 그는 1970년 예루살렘에 사무소를 내게 된다.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서다. 당시 예루살렘 시장이었던 테디 콜렉과 당국은 모셰 사프디에 이 고대 도시의 일부분을 복원하고 새로운 구역과 과거를 연결하는 작업을 부탁했다.
그렇게 그는 1970년부터 30년간 매주 한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해 작업을 했다. 그의 본거지는 미국 동부 보스턴인데 말이다.
이스라엘 도시 계획과 건축에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예루살렘 신시가지를 비롯해 올드시티의 다마스커스 문 근처도 재개발했고 똥 문(Dung Gate)의 복원 작업도 그가 맡았다.
그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서예루살렘 마스터플랜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도시 개발 계획을 주도했다. 서예루살렘 마스터플랜은 이스라엘 국토부(Israel Land Authority)와 예루살렘 지자체가 지원한 사업으로 서예루살렘 지역에서 팽창하는 유대인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 도시 계획으로 총 2만 개의 현대적인 주거 시설이 탄생했다. 마밀라 몰과 근처의 데이비드 시타델 호텔, 데이비드 빌리지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다마스카스 문 재건 계획 모형
http://cac.mcgill.ca/moshesafdie/large/cac_damascus_gate_scheme_1_fan.pdf
예루살렘 이외 지역에서도 그는 종횡무진이다. 벤구리온 국제공항의 에어사이드 터미널에서부터 가이사랴 지방 언덕 리조트 마을, 세계 기념비도 설계했고 현재는 사해 지역 도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도시 모디인일리트의 신도시 사업도 사프디 건축 사무소가 주도했다.
그는 경합을 통해 이스라엘의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조국의 복원 사업을 위해 일조하겠다는 신념이 바탕에 깔렸다. 벤구리온 국제공항 터미널 설계의 경우, 이전까지 사프디는 아예 공항 설계 경험이 없었음에도 도전한 프로젝트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에서 볼 수 있듯,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 디자인과 급격한 곡선 등으로 유명하다. 예루살렘 홀로코스트 박물관인 야드 바솀이나, 그의 대표작이자 데뷔작인 캐나다 몬트리올의 해비타트 67, 중국 베이징의 국립 예술박물관은 그의 실험적인 건축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해비타트 67
https://www.safdiearchitects.com/projects/habitat-67
중국 베이징의 국립 예술박물관
https://www.safdiearchitects.com/projects/national-art-museum-of-china
앞서 그는 유대계 북미 잡지인 하다샤(Hadassah)와의 인터뷰에서 국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나는 이스라엘인이다"며 "나는 비정상적인 시기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라고 할 있다"라며 애국심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