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기억하자' 야드 바셈(Yad Vashem)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참 애매하다. 수천 년간 디아스포라(Diaspora)로 지냈던 유대인들은 인종이라고 분류하기도 어렵고, 하나의 '얼'을 가진 민족이라고 겨우 아우를 수 있을 듯하다.
이 민족의 역사는 어둡고 길었다. 바벨론에 이어 로마에 침략을 당해 나라가 해체되더니 이후 2천 년 가까이 유럽을 떠돌며 이 나라 저 나라에 적응했다. 그래도 민족의 얼은 보전된 채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
그 장구한 핍박의 최정점이 2차 세계 대전 독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이 아닐까 싶다. 당시 900만 명에 이르렀던 유럽 거주 유대인 중 600만 명이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었다. 특히 이 중 150만 명은 어린이들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상처와 아픔은 가슴에, 민족의 상처와 아픔은 예술로 기억됐다.
'이름(Vashem)을 기억(Yad)하자'는 뜻의 야드 바셈은 1953년 예루살렘 헤르츨 언덕에 설립된 국립 기념관으로, 독일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한 공식 추모 시설이다. 기념관 내에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조각 박물관, 희생비, 유대교 회당, 국제학교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
2005년에 개방된 야드 바셈 박물관 내부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척이 제출한 기록들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살아남은 자들의 고백 인터뷰도 영상으로 볼 수 있어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아픔이 전해진다.
야드 바셈은 건축물로서도 가치가 있다. 새로 지어진 삼각형의 박물관을 지은 사람은 유대계 캐나다 건축가인 모쉐 샤프디(Moshe Safdie). 우리나라에서는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지은 건축가로 더 유명하다.
1938년생인 그는 1976년 제3차 중동 전쟁(6일 전쟁)을 겪은 이후, 자신의 건축 예술을 통해 조국인 이스라엘을 위해 공헌키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건축사무소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도심 계획이나 예루살렘 신시가지의 마밀라 몰,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 등을 설계했다.
두 개 면을 비스듬히 기대어 놓은 형태의 야드 바셈 박물관은 빛과 어둠의 대조가 명백하다. 면이 만나는 꼭짓점은 하늘을 향해 뚫려 있어 빛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역설적으로 전시 공간은 어둠에 속해 있다. 관람객들은 어두운 전시실을 지나 빛이 비치는 복도를 나온다. 그러곤 다시 또 다른 전시실로 들어가 유대인들의 고통을 되새긴다. 그 어둠과 빛이 지나간 고통과 현재를 상반되게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 전시실은 '이름의 방'으로 홀로코스트로 죽임을 당한 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한 명 한 명 보여주고 있다. 이 곳에 기록된 이름들을 통해 과거는 다시 한번 현재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라'라고.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면 예루살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라운지 같은 공간이 등장한다.
입구에서 이 곳으로 향하는 직선 통로는 없다. 관람객은 반드시 어둠(전시실)을 거쳐야 하며 마침내 현대 예루살렘을 장관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관람객은 홀로코스트의 상흔을 마음에 함께 안게 된다. 그 아픔을 공유하며 다시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이전과 같게 보이기 힘들다.
유대인은 아픔을, 고통을 기록하고 기억했다. 이름을 모았다. 그리고 현재를 일궈냈다. 과거를 최대한 정확하게 기억해 독일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현재 국제사회에서의 그들의 위상을, 민족정신을 공고히 했다.
우리나라에도 용산에 전쟁기념관, 경기도 광주에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등이 있지만 이 곳에서 받은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어폐가 있고, 위안부 역사관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흐리멍덩하게 기억되는 과거는 힘 있는 민족적 결집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한일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최근 상황에서 역사와 민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케된다.
[예루살렘 올드타운에서 야드 바셈 가기]
야드 바셈은 예루살렘 시청(City hall) 근처에서 1번 전차를 타고 20분 정도를 간 뒤, 'Har Herzl' 정류장에서 내린다. 여기서 750m를 걷거나, 야드 바셈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가면 된다.
구글 지도를 따라 야드 바셈 쪽으로 200m도 안되게 걷다 보면 셔틀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이렇게 생긴 셔틀을 타고 아주 조금만 이동하면 야드 바셈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