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는 수습이 들어오면 꼭 한 번씩 이렇게 핀잔을 줬다. "너네는 수습이 안 되는 상태라 수습인 거 알지?" 세상 꼰대스럽기 짝이 없는 말인데 사실 입사 직후의 신입사원들이 대체로 그렇긴 하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인턴사원 정도만 하고 온 친구들이 실무에 투입되어 바로 결과물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대부분 회사들이 3-6개월 정도의 수습 기간을 두고 실무를 가르친다. 이때는 어떤 실수나 잘못도 대체로 용서된다.
6년 넘게 직장생활을 한 내가 또 수습이 됐다. 저번 신입사원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의 육체 노동이다.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나는 수습 엄마가 됐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나를 수습하지 못할 정도다. 근데 이 수습은 해야 하는 업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를 양육하는 일이다. 실수를 했다간 스스로 용납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내가 언제 아기 목욕을 씻겨봤나, 수유를 해봤나, 아기 옷을 갈아입혀봤나, 기저귀를 갈아봤나. 하나같이 서투르기 짝이 없다.
아기가 신생아일 때는 매일이 공포와 당황의 연속이었다. 코딱지를 어떻게 빼내는지 몰라서 면봉으로 슬쩍 꺼냈는데 점막이 다쳐 피코딱지가 생긴 걸 보고 멘붕이 오기도 하고 우리 아기는 왜 이렇게 낮잠을 자지 않을까 하며 두뇌 발달이 더딜까 걱정하기도 했다. 밤잠 잘 자서 총 수면 시간이 적당하면 괜찮다고 한다. 정말 별 걱정을 다한다. 또 새벽에 아기가 배고파서 우는 걸 모르고 재우겠다며 2시간을 안고 달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생아는 수유 텀이 짧아서 배고팠던 건데 말이다. 분수토를 할 때마다 내 눈물도 터져 나왔다. 집 앞 소아과는 어찌나 자주 갔는지 선생님이 이제는 차트도 안 보고 이름을 부를 정도다.
가장 힘들었던 수행 중 하나는 모유수유다. 처음엔 젖량이 없어서 아기에게 수시로 먹이느라 고달프고 이후엔 유구염, 유방 울혈 등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한 고통에 시달린다. 다른 글에 썼듯, 정말 거덜 날 거 같은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100일쯤 되니까 이런 문제가 싹 사라지고 모유 생산량도 아기에 맞춰져 간다.
먹놀잠(먹고 놀고 자고) 패턴을 맞춰야 한다며 노는 아기를 억지로 재우려고 하다 짜증만 나게 한 적은 또 하루 이틀인가. 먹고 자버렸다고 오늘은 망했다고 혼자 낙심한 날은 또 얼마나 많았나. 완벽주의자의 비극이다. 아기의 작은 변화와 행동에 크게 일희일비를 해왔다. 아기가 울면 나도 울고 그러다 웃으면 나도 같이 행복해졌다. 탯줄은 잘려나갔어도 아기의 정서가 나를 지배한다.
엄마 수습 기간 3개월도 끝났다. 아기와 나도 점점 함께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기가 막 집에 왔을 때는 같이 울던 시간만 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점점 아기 덕분에 점점 행복해질 거라고 하는데 벌써 그런 기분이 든다. 아무리 아기가 울고 힘들어도 날 향해 웃어주면 다시 고통은 사라진다. 아니, 고통스럽더라도 그거와 별개로 아기를 위한 에너지와 사랑은 늘 가득 차있다.
누구나 엄마가 되면 수습 기간을 거친다. 직장과 다르게 이 수습 기간에는 매뉴얼이 없다. 조리원 동기나 주변 엄마들한테 물어봐도 되지만 정답은 없는 수련 기간이다. 태어나서 힘든 아기와 힘든 아기를 돌보느라 힘들어지는 엄마. 둘은 그저 사랑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엄마 노릇을 했다면, 그러니까 졸려하면 재워주고 배고파하면 먹여주고, 대소변을 본 후에 적절히 갈아주고 그랬다면 평균 이상의 수습 기간을 보낸 것이다. 어떻게 먹이는지 어떻게 재우는지, 어떻게 키우는지 그 모습은 제각각이다. 제각각인 모습 속에 수습 엄마들은 이전까지 가져보지 못한 극한의 사랑을 품고 있다. 그 사랑을 힘으로 수습 기간을 버틴다. 그 절대적인 사랑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좋은 수습이었다고 자평한다.
육아는 늘 새롭다고 한다. 아기는 어제오늘 늘 다르다. 컴퓨터나 로봇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내일은 또 새로운 수습 기간이 펼쳐질 것이다. 3개월의 엄마 수습 기간 동안 그래도 기본기는 익혔지 않은가. 엄마 노릇할 수 있다. 힘내서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 가보자. 세상에 이보다 숭고하고 어려운 임무가 어딨겠나. 수고했다 수습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