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후 또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산후조리원 천국이다' '꼭 가야 한다' '이왕이면 3주 정도 꽉 채워 가라' '마사지는 꼭 10번 이상 추가해서 받아라'였다. 출산의 고통이 지옥과 비슷해서일까. 조리원은 늘 천국에 비유되었고 나 역시 '출산 후 조리원' 코스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출산 병원을 결정하고 나름대로 엑셀 파일까지 만들어 가며 이 동네 조리원을 꼼꼼히 비교했다. 가격부터 마사지 후기, 음식, 모자동실(엄마와 아기가 같은 방을 쓰는 것), 산부인과와 집으로부터의 거리, 부대시설, 기타 서비스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가격은 35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 물론 비싼 곳은 1천만 원이 넘기도 하지만 이런 곳들은 대상에서 배제했다.
어느 날 불현듯 '40주간 내 뱃속에서 편안하게 지내던 아기와 떨어져 지내면 아기는 괜찮을까'라는 물음이 우리 부부에게 대두됐다.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출산 시 아기는 목숨을 걸고 나온다고 한다. 나와서도 갑작스러운 중력과 섭식 행위가 편안할리 만무하다. 웅크리고 있던 사지를 펼치려니까 자기 손발이 다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서 신생아들은 꽁꽁 싸매져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니 나 편하려고 산후조리원에 가는 게 맞는가 싶었다. 나야 이 더~러운 세상에 적응할 만큼 적응해서 중력 따위 무겁지도 않고 잠 좀 못 자도 잘 버티지만, 아기는 그게 힘드지 않겠는가. 먼저 태어나 먼저 살아본, 엄마라는 내가 이 아기를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산후조리원에 전화해 모자동실이 24시간 되는지 물어봤다. 원하면 된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2주만이라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한텐 말이다.
1. 조리원 음식을 믿으시나요?
고민을 하고 있는 중에 대기업에서 식자재 영업직으로 수년간 근무한 동생이 한마디 했다.
"누나, 거기 조리원 음식 만들 때 재료 뭐 쓰는 줄 알아? 진짜 별로야."
이따금씩 '조리원 음식 너무 맛있어요'라고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대단하다. 끼니마다 바뀌는 반찬에 심지어 특식이라며 랍스터도 나온다. 산후조리 기간엔 미역국만 먹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예비 엄마들이 현혹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리원 음식은 뷔페 음식과 비슷하다. 때깔이 좋다고, 맛있다고 다 좋은 재료고 영양이 풍부한가? 아니다. 조리원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예약한 곳은 체인으로 운영되는 조리원 중에서도 프리미엄 라인이었다. 근데도 동생 말에 의하면 식자재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보기에 좋으면 뭐한가. 사실 음식 맛이란 게 소스와 간 빨이 있지 않나. 조리원에 가면 고 소스 빨, 간빨에 속아 '맛있구나!'하고 먹을 수 있단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은 유기농 야채와 채소에 길들여 자라났다. 뭐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 가치를 확실히 안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훨씬 신선하고 신체 부작용(알레르기 같은)도 적다.
그런데 조리원에서 쓰는 식자재는 유기농과는 거리가 멀다. 대량 납품되는 식자재기 때문에 그냥저냥 적당하다. 학교 급식이나 구내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의 식자재를 생각하면 된다.
조리원에 조리 시설을 두기가 힘들어 급식 업체에서 그때그때 납품을 받고 데워만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신이 가려는 조리원이 어떻게 음식을 준비하는지 꼭 알아봐야 한다.
2. 산후 조리원이 산후 다이어트의 정답이 아니다.
간혹 가다 출산한 엄마들이 '산후 조리원 가서 며칠 만에 몇 키로가 빠졌어요'하고 체중계 인증샷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는 반면 나를 포함한 몇몇 지인들은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았는데도 2주 만에 6-7kg가 훌쩍 빠져버렸다. 심지어 이중에는 결혼식 당일날 몸무게(즉 초 빼빼 마른 상태)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
산후 조리원에서 빠질 살은 가지 않아도 빠진다. 전제 조건이 있다. '임신 기간 내에 적정 범위 내에서 살이 쪘을 경우' 말이다.
연구에 따르면 출산 1년 후 체중 증가와 연관성이 높은 요인은 '임신 전 체질량지수(BMI)'와 '임신 기간 중 체중 증가량' 그리고 '월평균 소득'이라고 한다. 보델리(Boardely)라는 학자는 인종과 관련 없이 임신 전 체중이 67.5kg 이상인 여성은 56.2kg 미만인 여성보다 출산 후 체중이 1kg 더 증가한다고 결론 내렸다. 또 국내 연구에서도 임신 전 체질량 지수가 높은 사람이 정상인 여성보다 출산 1년 후에 4.5kg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임신 전과 임신 중에 얼마나 관리를 잘했냐가 출산 후 다시 몸이 돌아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신 전이나 중에 식생활 관리를 하지 않고 이것저것 먹다 보면 부종도 더 쉽게 생긴다. 특히 기름진 음식, 인스턴트 등을 많이 먹으면 더욱 그렇다. 이미 불어있는 몸은 원상태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 한번 커졌던 풍선이 바람이 빠져도 더 늘어나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에 임신 중에 건강을 고려한 식생활을 하고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면 몸에 부종 자체가 적다. 다니다 보면 유달리 임신한 티가 나지 않는 임산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기를 낳고 난 후에도 대체로 쉽게 살이 빠진다.
임신 중 적정 체중 증가량은 BMI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0-12kg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기 몸무게가 3-4kg, 양수가 1-2kg 정도고 산모 혈액, 불어나는 유선 무게 등을 다 포함해서 저 정도라고 한다. 더 늘어났다면 그건 아기 살이 아니다. 내 살이다.
그럼 임신 중에 이미 적정 범위 이상 살이 찐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는 산후조리원이든 외부의 출장 산후 마사지를 활용하든, 마사지 후 금식을 해야 한다. 산후조리원 마사지를 받는다고 해서 살이 바로 빠지는 것이 아니다. 마사지는 근육을 이완하고 막힌 림프를 풀어 순환이 잘 되게 한다. 만지기만 했는데 살이 빠졌다는 게 말이 되나. 림프가 뚫리면서 부종도 완화된다는 거다. 문제는 마사지를 받고 난 후에 음식을 섭취하면 몸에 흡수가 잘 되어버린다. 살이 빠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살이 쪄버리는 것이다.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부종이 더 빨리, 쉽게' 가라앉을 뿐이다.
요컨대 산후조리원 마사지는 다이어트에 정답이 아니다. 출산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적당할지도 모른다. 여왕 대접받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산후마사지는 회당 최소 15만 원, 비싼 곳은 30만 원이 넘기도 한다. 정말 이 돈을 주고 이걸 받아야 할까? 마사지 좀 받았다 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마사지의 질은 가격이 아니라 마사지해주시는 분의 손 압과 실력, 업력에 달려있단 걸. 그리고 마사지받아서 살 빠지는 거였으면 다이어터들이 식생활 조절을 굳이 왜 하겠나. 그냥 마사지받지. 만약 조리원에서 산후 마사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산전 마사지' 서비스를 받아보자. 그 후에 산후 마사지를 받을지, 가격은 합리적인지 따져봐도 늦지않다.
3. 모유수유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산후조리원의 삶 노래다.
많은 산모들이 조리원에서 모유 유축과 직수(직접 수유)를 배운다. 며칠이 지나면 '오늘은 유축 몇 ml가 나왔어요'라며 자랑하기도 한다. 조리원 삶이 잠-식사-유축-식사-잠-밤 수유 이런 패턴의 반복이라고 한다.
조리원에서 처음부터 유축으로 젖을 먹이기 시작하면 완모(완전 모유수유)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처음 아기를 낳고 유선과 유두가 완전히 모유 공급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젖만 빼면 문제가 생긴다.
모유는 주문 후 생산 방식이다. 아기가 먹는 만큼 주문량이 들어가 다음 공급량이 결정된다.
유축을 하게 되면 아기가 얼마를 먹는지도 모르는 채 있는 대로 젖을 빼게 된다. 모유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모유량이 급증했는데 아기가 그만큼 먹어주질 못하면 유선은 팽창하고 결국 가슴 전체가 물풍선처럼 커지게 된다. 그러다 젖몸살이 오게 된다. 젖몸살에 한번 걸리면 옷이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오한이 든다고 한다. 산모들이 모유수유를 포기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다.
또 유축은 아기에게 직접 수유하는 것보다 유선을 골고루 자극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선 중간에 찌꺼기가 생기거나 막힐 위험도 있다. 이 또한 젖몸살 또는 유선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조리원에 간 산모들을 따라하겠다며 무작정 유축을 했다. 어느 하루는 가슴이 시원해질 만큼 다 빼내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웬걸. 그날 새벽부터 가슴에서 엄청 열이 나고 누워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졌다. 손을 댈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다음날 개인적으로 예약한 마사지샵에 갔다. 원장님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이게 뭡니까!!! 와 이럽니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다시는 유축하지 말라고 한다. 아, 이분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산후 마사지 달인이다. 은둔의 마사지 원장님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와 호흡이 맞아질 때까진 유축하지 말고 반드시 직접 수유를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또 가슴이 멜론처럼, 혹은 수박처럼 부풀어 오르고 공포의 젖몸살이 올지도 모른다.
모유수유를 좀 더 잘하고 싶다면 굳이 산후조리원에서 시키는 대로 유축하지 않아도 된다. 신은 우리 신체를 아주 정교하게 만드셨다. 아기에게 직접 주고 아기가 원하는 만큼만 생산하자. 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젖을 찾는 50일경까지는 힘들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오히려 가뿐해진다.
결국 나는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그 돈으로 6주간 산후도우미를 고용했다. 집에서 산모의 산후조리를 도와주는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은둔의 마사지 선생님께 2주간 유선 마사지를 받았다. 아직도 만족스럽게 완모를 할 수 있게 해 준 은인이다.
그럼 어떤 경우에 조리원에 가야 할까? 40주 임신 기간과 출산을 보상받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적극 찬성이다. 고급 조리원에서만 만들어진다는 네트워크를 위해서라면 그 또한 갈만한 이유에 해당한다. 다녀온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칭송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만약 산후조리원에 가는 이유를 위에 언급한 몸매 관리나 매일 식사 대접받는 기분 같은 것에서 찾는다면 정말 '굳이~'다. 차라리 산후도우미 업그레이드해서 VVIP급으로, 상주로 고용하자. 밤에도 아기 돌봐달라고 맡기면 조리원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음식도 해주신다. 좋은 야채, 투뿔 한우 사다가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음식 해달라고 하는 편이 훨씬 영양적으로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랑 24시간 내내 붙어 있으면서, 아기가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을 매일 매 시간 매 초마다 보는 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