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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ug 02. 2022

300 이하 맛세이 금지

나 포켓볼 칠 때 뒤로 큐걸이 잡던 사람인데

 초등학교  육상부는 학교의 자랑거리다. 상부 아이들은 업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종일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팔짱을 고 삑삑 호루라기를 불던 육상부 코치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몇 학년이냐고 묻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운동하기 좋은 체형이라며 지금은 치마를 입었으니 내일 체육복을 입한번 뛰어보라 했다. 앞서 걱정하는 못된 버릇 그때도 있었나 보다. 육상부에 들어가면 공부는 어떻게 하지? 하며 이미 머릿속으로는 전지훈련까지 다녀왔다. 그다음 날 아침 긴장된 마음으로 코치 앞에서 50미터 달리기를 했다. 그는 내 등을 두드리며 "공부 열심히 해라" 하고는 안으로 들어다.

 

분명히 격려의 말인데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고등학교 때 당구장은 출입금지다. 걸리면 바로 교무실로 끌려갔는데, 반항기 충만하던 그때 나는 순전히 가지 말라고 해서 당구장에 갔다. 나를 인도한 유경험자 친구는 당구는 자세가 전부라며, 처음에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워야 한다 당구장  아르바이트생까지 초빙해왔다. 그분은 큐걸이부터 참으로 친절하게 알려주다가 '다이에 몸을 최대한 붙여라'에서 영 나아지지 않는 뻣뻣한 나의 자세에 '이런데 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고는 수업을 포기다.


 역시나 고등학생에게 적절한 응원의 말인데, 우 언짢았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나는 포켓볼에 의외의 재능을 발했다. 판에 팔이 좀 흔들리는 게 흠이었지만 공을 잘 봤다. 다른 운동은 취미도 특기도 없었는데 포켓볼은 일단 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공을 하나씩 넣을 때 다른 데서 느끼 못한 쾌감이 있었다.  2년간은 당구장에 정말 많이 갔다. 공강 시간마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며 실력을 키워 나갔다. 반에는 수업료도 많이 지불했다. 당구비는 짤 없이 진 사람이 내는 거까. 당시 제일 부러운 사람은 '300 이하 세이 금지' 팻말 아래에서도 당당히 맛세이 찍는 당구 고수였다.


  당구장에 들어가 매의 눈으로 큐대를 골랐다. 장에서 개인 큐대를 꺼내 쓰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손가락장갑 따위는 끼지 않고 맨 손으로 큐걸이를 잡았다. 가오가 무너진다며 절대 당구장 슬리퍼는 신지 않았다. 초크칠은 반드시 큐대를 옆으로 들고 찍찍 소리 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큐대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초크칠을 하는 사람은 소심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부끄럽다.

 1번과 8번 공을 정리해 다이에 올린 후 절도 있게 밀어 투 포인트에 갖다 두었다. 첫 큐에 골고루 퍼뜨리고 싶었는데 그게 제일 어려웠다. 어쩌다 첫 큐에 공이 두 개 들어가면 정말 신이 났다. 뽀록으로 들어가면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 나는, 매너 있는 사람이었다.


 주로 다이다이로 띠공과 막공으로 나눠 넣는 게임을 했다. 포켓볼만 치면 승부욕이 샘솟아서 소개팅을 하러 나가서도 목적 잊고 기를 쓰고 이기고 오곤 했다. 심지어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묻는 상대에게 공 칠 때 겐세이 놓지 말라며 타박을 했다. 나에게 6판을 내리 지면서 '이번 판은 봐줬다', '다음 판은 안 봐준다'. '이제 제대로 실력 보여주겠다' 하다 마지막엔 '다음번에는 안 봐준다' 하는 말에 분노해 연을 끊는 통에 '다음번'을 맞이하지 못하기도 했다. 또다시, 정말 부끄럽다.

 몇 개의 뒷공까지 보고 치는 수준은 되지 않았지만 한 번에 두세 개 넣었다. 줄줄이 있는 공 한큐에 밀어 넣었고, 흰 공 바로 앞 공은 흰 공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끊어서 쳐 뒤로 빼낸 후 다음 공을 넣었다.  딱 붙은 공은 큐대를 세워 떨어뜨렸다. 공이 다이에 딱 붙어 큐걸이가 나오지 않는 위치에서도 없어 보인다며 닭발을 사용하지 않고 다이에 걸터앉아 한발 끝은 바닥에 꼭 대고 뒤로 큐걸이를 잡아 넣었다. 판은 평균 7분 에서 끝냈다. 속해서 볼을 넣으면 사구 치던 사람들이 쳐다보곤 했다. 당구장에서 만난 700프로는 내게 사구를 배워 볼 것을 진지하게 권유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눈빛은 자넷리라며 시 나인볼로 유명했던 그녀의 이름을 따 '자켓'이라는 별명을 내게 붙여 주었다. 한동안 싸이월드 대문에는 친구가 찍어, 뒤로 큐걸이를 후까시를 잡고 있는 '자켓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켓볼 승부에 집착하고 당구장에 같이 다닐 친구도 많으며, 뒤로 거는 큐걸이 가능한 데다 심지어 그 사진을 sns에 올리 내가 있었다. 히키코모리인 지금의 나를 보면 큐대를 들고 있는 습조차 상상하기 어려울 테.


 히키코모리자신에게 꽤 만족하는 나는 그때의 내가 무 그거나 하진 않다.

 그런데 다이다이로 포켓볼 제대로 한 번 치고 싶는 마음불쑥 든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오면, 꼭 이겨야겠다. 하핫.




* 제가 당구장을 다니던 때 사용했던 순화되지 않은 당구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 커버 사진: 완벽한 큐걸이, 자넷리(네이버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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