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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울 Jul 29. 2022

순간 이동하는 까만 날벌레의 정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이런 영화를 보 한 번쯤 전원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벌레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무식한 소리인 줄 알지만 사슴벌레 같은 '곤충'은 좋은데 모기 같은 '벌레'는 질색이다. 집 안에 벌레 한 마리만 보여도 당장 계피 에탄올을 여기저기 뿌려댄다. 잡는 데 집착한다. 여름 더위보다 파리가 더 두려운 지경.


 여름이 되자마자 벌레가 몰한다. 사신경과 운동신경을  동원해 벌레를 잡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몹시 빠르다. 분명 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체가 없다. 나중엔 얘가 순간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 든다. 

 문제는 벌레가 내 눈에만 거슬린다는 게다. 레 잡 동참을 위해 벌레 한 마  게임 10분 추가를 선언한다. 랬더니 아이는 잡아 놓은 벌레 시체 자기 달란다. 살생 후 휴지를 가지러 간 사이 몰레 벌레 시체를 들고 온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김가루를 가져와서 레라고 우긴다. 어쩌다 잡으면 이건 좀 크니까 20분짜리라며 협상을 시도한다. 잡는 데에만 집중해주지 않겠니.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앉았는데 눈앞에 또 까만 벌레가 나타났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깜빡깜빡하니 다시 보이다 또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말 순간이동을 하구나! 겠다고 자꾸 손뼉을 치니 옆에서 뭐하냐고 묻는다. 벌레 이야기를 하니 무슨 소리냐 한다. 순간 닭살이 돋는다.


 비문증이었다.

 안구의 유리체가 혼탁하거나 안저 출혈 따위로 인하여 눈앞에 물체가 날아다니는 듯이 보이는 증상, 비문증.


 안과에서는 각막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다. 몹시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 병원에서 이석증 진단받고 머리를 휙휙 돌려 치료받은 지 채 한 달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비문증이라니.


  제대로 얻어맞다. 석증, 비문증은 후유증인 셈이다. 이제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걱정이 되는 게 아니고 짜증이 난다. 또? 여기도?

 따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걷. 가사 노동만 해도 얼마나 많이 움직이는가. 식습관이 나쁜 것도 아니고 과음과 흡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마흔이 넘은 것뿐인데 어쩌면 이렇게 삐걱거릴 수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노안을 진단받았을 때 진료차트에 쓰여 있는 내 나이 앞자리는 3이었다. 라섹수술로 멀리 있는 것을 잘 보이게 교정을 해 놓았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체를 보는 게 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했다. 유를 불문하고 정말 야속했다. 사촌동생과 함께 레고를 조립하던 아이가 레고 피스를 찾아달라는 동생의 말에 'ㅇㅇ야, 잠깐 기다려, 형아가 노안이 와서 찾기가 힘들다' 했을 때는 온 가족이 포복절도했지만, '아니 벌써 노안이 무슨 말이야' 하며 뒤 끝을 흐렸다.


 만으로도 앞자리가 4가 되자마자 여름에만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고, 아침에 일어나면 발이 시렸다. 많이 먹어도 배가 나오지 않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그런 체질은 없구나'를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빨간색 '유소견'이 늘어난다. 자꾸만 추가 검사를 하라 하고, 검사를 하면 이제 6개월마다, 1년마다 추적 관찰을 하란다. 체 몇 개를 추적하라는 거냐, 내가 추적자냐고.


 분야를 망라한 양하고 즐거운 화제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이제 대화의 3분의 1은 건강 이야기이다. 역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 치유는 없다, 어디가 아프다,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귀찮아도 병원에 가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들이 우리 너무 가까이 있다. 예전엔 우리 윗 세대에서 실례가 나왔는데, 이제 우리 또래의 사례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쓸하게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제 우리 나이에는 어쩔 수 없나 봐"


 뭐 어쩌겠는가.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다는데. 나의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것을, 이제는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내 몸이 상하는 걸 감당하며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할 가치가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알라는 신호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도 너무 성실하게, 렇게 렬하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알려지는 말자.

충분히 깨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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